반응형

20년만에 다시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여기에는 나의 스무살 시절의 치기어린 밑줄이 가득하다.

 

당시에는 국립의료원에 한방진료부가 막 생기던 시절이었다. 한의대생들이 그걸 반겼을까? 아니다. 양방에서 한의학을 흡수통합하려 한다며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던 시기였고, 서울소재 의과대학들이 한방병원을 인가받기 위해 노력하던(한방병원들이 중풍으로 돈을 쓸어담던) 시절이었다. 종합병원에 한의과가 생기면 한의대생들이 반대하던 시절.

 

한의대생들은 의과대학에서 한방병원을 세우는 것조차 의료일원화 시도로 간주하고 경계했다. 당시 의료일원화는 친일과 같은 개념이었다. 절대는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것!

 

그만큼 자부심이 쩔었다. 한의대생들이 가진 이 자부심은 의대 커트라인을 넘어서던 1988년부터 2004년까지 지속되었다.

수능 점수가 너무 높게 나와서 그 점수가 아까워서 의대 안 가고 한의대 왔다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우리학년에는 의대 졸업하고 다시 한의대에 입학한 형들이 5명 있었다.

 

약사들은 한약을 판매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던 시절... 이 책에도 보약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던 호시절 이야기가 가득하다. 한의대생이 한의원을 부르조와 의료기관이라고 부를 정도니(당시 한의원 연매출평균이 4.6억이었다. 의원급 중에서는 탑이던 시절....그때 국립의대 등록금이 학기당 100만원 정도) 지금 2014년의 한의원들이 부르조와 의료기관인가? 후후후 시골에서 물치잡과와 경쟁하고 있는 판국에.

 

아무튼 서울대 의대 졸업하고 독일로 떠나서 30년만에 귀국한 노의사가 의대보다 한의대 커트라인이 (200점 만점중) 10점이나 높은 것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던 시절...

 

20년전의 한의사 = 편하게 돈 잘 버는 직업.이었다.

 

나는 지난 20년간 한의대를 휩쓸고간 유행을 모두 목격했다. 사상이 뜨다가 복치가 뜨고, 동씨가 뜨다가 MPS 근육학 광풍이 불다가, 동의보감이 다시 패권을 잡다가... 돌고 돌고 돌았다.

 

이 책에는 당시 학생들이 한의학에 대한 느낌을 기술한 리포트로 가득한데... '뭔가 있겠지. 그래 뭔가 있을꺼야.'라는 모호한 감정을 갖고, '동양적 사고'를 하라 '관을 세워라. 깨달아야 한다'는 교수들에게 대들고 파고들기 보다는 어느 순간 서서히 적응하기로 마음먹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졸업하고 면허증을 받게 되는 그들의 처절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 대가리로 사고하는데 동양적 사고가 어디 있고, 서양적 사고가 어디 있냐? 이런 말장난에 놀아났었다니 분하고 또 분하다. 한의대생이 듣고 이해가 안되는 내용은 의대생도 이해가 안되고 공대생도 이해가 안되고 무용과도 이해가 안되는거야.

 

이 책에는 숙지황 먹으면 설사 줄줄한다는 학생이 나오고, 수입한약재에는 방부재가 범벅이고 국산 인삼은 농약이 엄청나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이 당시에 비하면 지금 한약재는 정말 엄청나게 관리가 잘 되고 있다. 하지만 한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왕자와 거지만큼이나 달라졌다. 한약의 품질은 몇배나 더 좋아졌는데 왜 인식은 그 반대가 됐을까?

 

88년 노태우 시절 한국의 사정이 갑자기 좋아졌다. 사람들이 자가용을 사고 아파트를 사고, 돈이 도는 호황이었다. 때마침 나온 대형약탕기와 레토르트 파우치라는 물건은 지금의 임플란트처럼 한의사들에게 혁명적인 부의 창출을 도왔다. 사람들 호주머니에 돈은 많아졌는데 건강을 위해 투자할 거라고는 한약만큼 좋은 게 없었다.

원래 먹을 게 많으면 똥파리가 꼬인다. 한약에 약사들이 달려든 것이다. 1993년에 한약분쟁이 발발해서 2000년까지 이어진다. 무려 8년간의 대전쟁. 그 정점은 전광렬이 찍어주었다. 허준드라마가 나오면서 한약은 그야말로 최고의 정점을 찍었다. 한의사들은 모두 부자였다. 경희대 한의대 입학성적이 서울대 의대랑 같았다. 연세대 의대 예비대학 가는 버스 안에서 경희대 한의대 추가합격 소식을 듣고 버스에서 내리던 시절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때부터는 내리막만 있었다. 한의대를 졸업하면 3억을 그냥 빌려주던 시절이었다.

 

8년간의 긴 전쟁 뒤에 약사들은 한약분쟁으로 촉발된 의약분업이라는 호재를 안고 한약과 안녕을 고했다. 약사들과의 전쟁에 기력을 너무 많이 소진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우리는 한약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초대박 브랜드를 관리하지 못했다. 2002년도에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이 나온 뒤로는 더 힘들어졌다. 명절 특수는 서서히 줄다가 2010년경 전국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명절 때는 약 2주간 약탕기가 풀로 돌아갔다. 하루종일 약만 달여도 다 못 달였다. 추석에 한약을 주문하면 2주 뒤에 받을 정도였다. 어버이날 선물은 당연히 부모님 보약이었다. 부모님 모시고 와서 진맥하고 40만원짜리 보약을 안겨주던 풍습 대신에 인터넷 클릭질 몇번에 5만원에 120포나 주는 대기업 홍삼액(음료수와 같다)을 택배로 본가에 직접 발송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하는 브랜드에 고급포장으로 폼도 난다.

 

좋은 시절은 지났다. 양방에 흡수통합되는 걸 반대하던 시절에서 이제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절실한 시기가 됐다. 이제는 카페에서 무자격자가 만들어주는 허브티는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 몇천원을 더 주고라도 사먹는 사람들이 한의사 면허증 가진 한의사가 처방하는 한약이라고 하면 혹시 간 나빠지지는 않냐고 되묻는 황당한 시대가 됐다. 야, 허브티가 한약이야 이 멍충이들아.

요즘 한약들이 얼마나 깨끗한 줄 아냐? 니가 먹는 쌀보다 더 깨끗해. 이것들아.

 

현실은 암울하다. 요즘 한의사카페에 올라오는 강의들 보면 한약 강의가 별로 없다. 악순환이다. 쉽지 않은 시절이다. 비지니스의 문제만은 아니다.<bk>

반응형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