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2년부터 '개인'을 주제로한 인터넷언론사를 운영하고 있고, 2008년부터는 주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초보감독으로 이 영화를 봤을 때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스토리는 영화보다는 인간극장이 더 탄탄하고 재미있다.
1. 너무 쥐어짜낸다
슬픔은 곡소리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시작과 끝을 곡소리로 채워넣음으로써 관객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의자에서 할아버지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컷은 정말 너무너무너무 진부했다. 내복을 태우는 장면부터 너무너무 쥐어짜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의 곡소리로 극장을 채우기보다는 아예 오디오를 꺼버려도 관객에게 울림은 훨씬 깊었을 것이다. 그냥 할아버지가 자주 쓰던 어떤 물건 하나만 오래 비쳐줬어도 긴 여운이 남았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너무 짧았어. 뭔가 더 여운이 느껴지는 마무리가 필요했는데... 뭐 좀 생각도 하고 이별의 감정을 느껴보려는데 불이 켜지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 젠장!
2.너무 보여준다
개사체, 할아버지 시신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
정작 할어버지는 죽었는데 관객은 할아버지의 유언이 뭔지는 알 수 없었다.
3.지남력 상실의 편집
영화를 보다보면 게절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관객이 못 따라간다.
시간에 대한 자막을 넣어줬어야 하지 않을까?
참고로 두분은 1938년에 결혼했고(당시 할머니 14세, 할아버지 19세) 할아버지는 2013년에 돌아가심.
4. 불편한 시선
내가 감독이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워낭소리도 그랬지만, 소가 죽든 할배가 먼저 죽든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나는 게임.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감독은 몇해전 큰 논란이 됐던 굶어죽기 직전의 아프리카 아이를 노려보는 독수리 사진처럼 비정함마저 느꼈을 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결국 할아버지가 죽어야만 '완성'될테니까.
5. 부전
장기의 부전은 사람을 매우 무력하게 만든다. 나도 이런 환자를 접한 적이 있다. 아무리 물을 줘도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화초처럼 사람이 서서히 나빠진다. 침몰을 기다리는 배를 지켜보는 느낌이다. 할아버지는 예상대로 먹지 못했다. 사지가 말라가며 비위가 멈추고 사망했다.
노인은 걷지 못하고 먹지 못하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몇달을 못 버틸 수도 있다.
6. 야 인생 참 짧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건 참 많다. 신경이 쓰이는 사소한 일들도 많다. 이 영화는 쉼표같은 의미가 있다. 얘들아, 잠깐 멈춰봐.
부모님 보여드릴 영화가 아니라, 널 위한 영화야. 너도 곧 이렇게 늙어갈테니. 할배말처럼 꽃은 서리맞으면 떨어져.
집에서 가끔 다큐멘터리 편집을 하다보면 느낀다. 하루가 24시간이잖아? 그걸 풀로 다 찍는다 치자. 그 중에 쓸만한 컷이 거의 없다. 놀랍지? 의외로 굉장히 지루해.
인생을 다 찍어놔도 막상 편집하면 칠십평생이 2시간 남짓으로 줄어들 수도 있어. 그만큼 우리 삶의 농도가 옅어. 지난 1년 동안 뭐하고 살았나싶어. 아껴서 진하게 살아야해. 하고싶은거 팍팍 하면서. 찐하게 살아야해. 무엇보다 가족들과 재밌는거 많이 하면서 추억을 많이 쌓아야해. 은행 잔고 같은거야. 이런 추억의 잔고가 없으면 나중에 헤어짐이 닥치면 상실감과 후회가 너무 크게 느껴져. 애가 죽으면 노인이 죽은 거 보다 더 슬픔이 커. 꺼내보며 추억할 잔고가 없기 때문이야.
우리 인생은 필름 같은 것 같아. 찍을 수 있는 분량이 정해져있어. 필름을 무한정 쓸 순 없고, NG가 났다고 끊고 다시 찍을 수가 없어. 엄마 자궁에서 슬레이트 치고 세상에 튀어나온 순간부터 그냥 풀 촬영이야. 뭐랄까. 인생이라는 건 말야... 하나의 '롱 테이크 샷'이야. 편집없이. 꽉 채워야해. 감독들은 아는 이야기겠지만, 롱테이크 잘 찍는 감독이 정말 고수야. 사실 편집해서 스토리 만드는 건 초보도 할 수 있거든. 근데 롱테이크를 지루하지 않게 찍으려면 정말 머리를 엄청 써야해. 왜냐면 쓸모없는 장면이 안 나오게 해야하거든.
아무튼 남겨진 할머니에게 이 영화는 할배를 추억할 수 있는 큰 잔고가 되었겠다 싶네.
아, 그리고 이 영화 음향감독이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오디오 잘 땄더라. 마이크도 안 보이고. 비결이 뭘까.
아 그리고 하나 더. 역시 화면은 뭐니뭐니 해도 안 흔들리는 게 짱이야!!!!!!!
좋은 영화야. 뭐랄까. 같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동지애가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당연히 극장에 가서 봐줘야 한다는 생존본능 같은 걸 느끼면서 봤어. 무엇보다 찍는데 몇년 걸리잖아. 고생했다는 게 느껴졌어.
아무튼 이런 영화가 상업적으로도 좋은 성적을 내야 영화판이 더 다양해질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