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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좋은 회사 사장이 여기 있다. 그는 파산했다.

 

94년 창업. 20006년 파산. 그 뒤로 8년간의 쭉 신용불량자 생활.

누군가의 인생의 20년의 시간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실패의 경험을 털어놓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더구나 매출 100억대의 벤처사장.

 

썩은 팔을 잘라내야할 시기에 그는 머뭇거렸다. 자본가가 되기 싫었다는 그의 말.

팔을 내주는 대신 심장까지 갖다바쳐야 했다.

성장과 생존의 갈림길에서 운 좋게 생존해오다가 결국 성장의 덫에 걸려들었다.

늘어난 직원에 불어난 몸집으로 허둥대다가 늪에 더욱 빠져버렸다.

오랜기간 아리수한글의 개발에 지나친 자금을 투입했는데 아웃풋이 나오지 않으니 회사는 망한다.

쌩돈 30억을 부었는데 매출이 연 10억 나오면, 당연히 망한다. 나중에 이 사업은 5천만원에 팔려갔다. 1/60로 가치평가된 것.

기회가 있을 때 피도 눈물도 없이 악독한 마음으로 결단했어야한다는 저자의 후회.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직원은 물론 그 가족까지 절벽으로 떨어졌다. 본인도 물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는 그 바닥 베테랑을 영입하든지, 직접 뛰어들거라면 시간을 갖고 준비를 해야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요즘도 은행가서 병원 차린다고 하면 몇억씩 잘 빌려준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할 것이 은행이란 자선사업하는 곳이 아니다. 돈 더 벌려고 너한테 돈 빌려주는거야.

돈놀이하는 고상한 곳이 은행이야. 하이에나 같아서 반드시 이자까지 받아낸다.

그리고 돈을 못 받을 것 같으면 쓰레기 취급하면서 뼈까지 발라먹으려고 달려든다.

사회 신출내기들은 이걸 망각하면 안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업은 재고에 망하고 외상에 망한다. 흑자가 나도 받을돈 못 받으면 파산이다. 얼마나 억울하냐. 근데 그게 현실이다.

재고와 외상이 없는 의료업에 진출한 당신은 천운이다!

 

방송매체에 어떤 회사의 사장이 계속 나온다면 분명히 그 회사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는 반증이다. 대부분 돈 때문에 나온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티비에 나오는 의사는 명의가 아니라 돈이 필요한 의사들이다.

 

 

기업이라는 제도는 인류가 발명해낸 최고의 조직이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사업은 지속할 때 이익이 발생해야 의미가 있다.

나의 한의원은 지속시 이익이 증가할 것인가? 그래 돈도 벌어야하지만 사회에 좋은 일 하고 가자!

벌써 나도 20년은 이미 써버렸고, 이제 고작 20년 정도 시간이 남아 있다.

 

건범이형 사업 초창기 날밤새면서도 즐거웠고, 출근하는게 신났다는 추억. 나는 개업초기 별로 그랬던 기억이 없다.

돈을 빌리면 그 돈이 시키는대로 일을 하게 된다는 뒤늦은 후회. 그래, 사람이 나쁘냐 돈이 나쁘지.

개업해서 아둥바둥살다보면 내가 한의원 원장인지, 대출받은 00은행 직원인지 헷갈리게 된다.

 

이익이 나지 않아 신입사원들을 해고했을 때의 고통스러움. 간조 하나 해고하는데도 정말 말이 안 떨어지는데 에휴.

발버둥쳐도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회사.

목을 조르는 금융이자의 압박.

아아..

현실을 직시해라. 피하면 오판하고 오판은 파국을 만든다.

언제든 직언할 수 있는 조언가 그룹을 옆에 둬라.

파산하기 직전 절친인 회계사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그 회사에 100억이 들어갔으면 지금 니 몸에 90억이 붙어 있는거다."

 

그래, 누구나 사람에게는 몸값이라는 게 있다. 니가 개업해서 매달 2천의 수입을 집에 가져온다고 치자. 그럼 니 몸에 100억이 붙어 있는거다. 금덩어리 몸이지.

그래서 병원 원장의 건강은 이 사회 누구보다도 중요하다. 노가다 목수랑 같아서 일을 나가지 않으면 당장 수입이 제로가 되어 가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

 

니 몸뚱아리는 몸값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무형적인 사회의 기여도까지 합쳐서.

 

정면돌파.

그는 파산을 택했다. 나도 풍파를 겪으며 살고보니 이 세상 가장 좋은 처세술이 정면돌파더라.

 

돈으로 시간을 살 수도 있고, 시간으로 돈을 살 수도 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다른 회사에 지불할 물품대금, 즉 외상값부터 안 준다. 그 다음 자기네 직원들 월급이 밀리고 최후에야 은행이자를 못 낸다.

많은 사장들이 남은 물건을 몰래 팔아치우거나 회사 재산을 빼돌려서 그 돈을 들고 외국으로 튄다.

전문용어로 야반도주.

 

건범이형은 정반대로 정산을 했다. 물품대금부터 주고 직원 월급주고 은행을 처리했다.

여기서 친구 회계사의 조언.

 

50만원 떼이나 5억 떼이나 하루에 전화하는 건 한통으로 똑같다. 채무액이 아니라 채권자 수를 줄어야 한다.

돈 떼인 거래처가 100개면 하루에 독촉전화가 100통 온다. 생활이 안된다.

 

이 책 제목처럼 저자는 은행으로부터의 신용은 잃었지만 사회(지인, 친구, 직원, 거래처, 가족)로부터의 신용은 잃지 않았다.

 

파산은 누군가에게 닥칠 수 있는 불행에 대한 사회적 보험 개념이다.

가치가 0인 사람에게 0이라고 선언해주는 것이 파산이다.

어차피 파산선언해주나 안 해주나 빚은 못 갚는다.

평생 신용거래도 안 되는 사람. 자살이라도 안 하게해주는 것이 파산제도다.

 

파산과 회생의 차이.

파산은 재산을 모두 빚잔치에 쓰고도 못 갚은 빚을 탕감해주는 것.

회생이란? 의료인처럼 수입이 있는 애들에게 5년간 일정금액 갚게하고 나머지 빚은 탕감해주는 것.

 

면책과 함께 신용불량자가 된다. 등급은 9등급.

신용카드는 못 만듬. 단, 직불카드는 만들 수 있음.

대출과 신용카드는 안 되지만 은행거래는 다 할 수 있음.

 

그는 현재 망막색소변성으로 사물형체만 보인다. 글자를 읽을 수 없다.

그런데 파산 2년 후 출판사에 들어가 출판기획업을 하고 있다. 눈이 안 보이는데 말이다.

40대에 파산당한 사람이 장애를 갖고도 이렇게 사회활동을 하기위해서는 얼마나 큰 맷집이 필요한가! 가늠이 안된다.

 

멘탈갑이라는 말은 이 양반을 위해서 태어난 말인듯하다.

 

그는 마지막에 자신이 왜 망했는지 담담히 적고 있다.

초심, 일관성의 상실.

그는 뒤늦게 충고한다.

자기 꿈을 좇는 자여, 악마의 유혹에 굴하지 말고 너 자신을 믿으며 너의 길을 가라.

 

1987년 한국민은 정치적 자유를 쟁취했다.

그 뒤에 경제적으로도 '자유'를 강조하는 사회로 변했다.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 최고의 가치로 숭상받았다.

사회분위기가 쏠리면서 건범이형도 휩쓸렸다.

나도 회사를 빨리 키워 '남들처럼' 코스닥 등록을 해야겠어!!

 

결과는 파국이었다.

 

비교하지마라.

망한 코닥이 사회에 기여한 바가 승승장구하는 후지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자꾸 남과 비교하는 이유는 비교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늙어 죽듯 기업도 생로병사가 있다. 영원한 기업은 없다

불꽃처럼 피고 지는 과정에서 얼마나 사회에 좋은 기여를 했느냐.

 

 

 

이 책의 마지막에 정연탁 원장님 한의원에서 글을 썼다는 대목이 나온다.

 

건범이형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부친의 삶을 한권의 책으로 선물하기 위해 인터뷰를 했다는데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누구나 부모가 있다. 부모의 삶을 인터뷰 형식으로 동영상 편집해서 후손에게 물려주면 그것이야말로 집안의 가보가 되지 않을까싶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독서는 단돈 만원으로 저자가 내 귀에 속삭여주는 것과 같다.

우리가 어떤 업계에서건 이렇게 실패한 경험의 이야기를 우리가 들어볼 기회란 거의 없다.

건범이형의 용기와 배려에 감사하며 형 앞날에 행운이 함께 깃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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