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 / 이병민
우리나라 애들, 일본애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비난하는 언론이 많다. 10년 공부해도 입도 벙끗 못한다고 비판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라.
당연히 영어를 못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선 영어와 관련하여 카츠루는 3가지 그룹으로 나누었다.
1. 내부그룹 : 영어를 모국으로 쓰는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2. 외부그룹 : 영어를 제2언어, 공용어로 쓰는 나라, 홍콩, 필리핀, 나이지리아, 케냐,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3. 확장그룹 : 영어를 순수하게 외국어로만 쓰는 나라들. 한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확장 그룹 중에서도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인구가 많고, 자국어로 된 컨텐츠를 생산할 능력이 있고,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에서는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외부그룹처럼 미국이나 영국 식민지 경험도 없다. 자연히 영어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핀란드나 벨기에 같은 나라는 인구도 적고, 자국에서 생산하는 티비 프로그램이나 책이 적다. 그래서 영어권에서 주로 수입해오고, 어릴 때부터 방송에서 더빙도 없이(자막이 더 경제적임)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영어를 모르면 제대로된 문화컨텐츠를 소비할 수가 없다.
우리의 1980년대를 돌이켜보라. 주말 황금시간대에는 미국 드라마가 차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한국산 드라마가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문화의 힘이 커진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이 영어를 못한다는 언론 보도는 모두 거짓이다. 한국인들은 일상에서 영어가 필요 없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에서는 공용어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은 단일 민족이 천년 이상 동일한 언어로 사용하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케이스의 나라다. 영어에 노출될 기회가 없다.
토플 성적만 해도 그렇다. 토플 시험 응시자의 1/5이 한국인이다. 외국애들은 정말 미국 가서 학교 다닐 목적으로만 토플 시험을 보지만 한국인들은 미국 가서 살 생각이 전혀 없는데도 토플을 본다. 그런 두 집단의 성적을 단순 비교하여 한국인의 영어수준이 낮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는 것은 부당하다.
그런 기사에 속아 한국에 영어광풍이 불었다. 기러기 아빠가 생기고, 유치원도 영어전용 유치원이 생겼다.
한국인들은 '목적' 없이 영어를 배운다. 잘하면 잘할수록 좋다는 식이다. 내가 오퍼상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관광용으로 배우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작정 막연히 영어를 잘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영어를 배운다.
영어를 잘 하면 외국자본이 투자한다는 이명박의 말도 거짓이다. 사실 우간다, 짐바브웨에서 영어가 훨씬 잘 통하고 국가 공용 문서도 다 영어로 돼 있다. 하지만 거기 투자하는 외국인은 드물다. 영어가 만능 도깨비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영어가 한국인에게 필요한가부터 자문해봐야 한다.
인간이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려면 태어나자마자 그 언어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야 하고 만 4세가 되기 전에 만시간 이상 노출되어야 하고 4천만번 이상의 발화가 필요하다. 만 3세가 되면 어른 3명 분량에 맞먹는 단어를 쏟아낸다. 애들이 수다쟁이가 되는 이유다. 8세 이전까지는 2만시간이 넘는 언어환경이 요구된다. 그리고 3-6천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보다 많은 단어를 알아듣는다.
이 과정이 수동적인 티비나 비디오로는 안된다. 반드시 인간으로부터 습득되어야 한다. 인간은 가족과 친구들과의 소통을 통해 언어를 배운다. 미드만 봐서는 영어를 못 배운다는 이야기다. 반드시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야 배울 수 있다.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고 이해하고 감정을 느끼며 교감을 해야 빨리 는다.
엄청나게 많이 접해야 언어를 익힐 수 있다.
이중언어자로 키우려면 깨어있는 시간의 20-30% 이상을 노출 시켜야 한다. 하루 4시간 이상 그 언어를 사용해야, 그것도 의미있는 쌍방소통 방식으로.
그렇게 해도 무려 4년이나 걸려야 언어를 습득할 수가 있다.
미국 이민간 자식들은 영어를 잘 하는데 부모들은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남들 다 자는 밤에 청소하고 설겆이하고 집에 가면 한국 드라마보고 한국어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즉 영어에 노출되는 기회가 극도로 적어서 못 배우는 것이지 나이가 많아서 영어를 못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반면 자식들은 하루종일 영어를 쓰며 돌아다닌다.
발음도 어릴 때 배워야만 좋아지는 게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노출되고 습득되느냐에 따라 발음도 달라진다. 저자는 27세에 유학을 갔는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할런몰'이라는 곳에서 주로 쇼핑을 했다고 한다. 그냥 친구들이 할런몰이라고 하길래 자기도 그렇게 말했는데 나중에 알고봤더니 highland mall이라는 것. 하일랜드 몰이라고 발음하지 않은 것은 습득방식의 차이지 나이 때문이 아니라는 것.
나이가 절대적인 변수가 아니며 영어 노출과 사용의 강도가 더 중요하다.
영어유치원에서 몇시간 영어에 노출된 뒤에 다시 한국어로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나이보다 시간과 노출환경이 더 중요해!!!
하지만 7세 이전에 이민을 가서 완전하게 노출이 되는 삶을 살면 원어민과 같아지고, 10대 후반까지만 가서 살아도 국내에서 배우는 것보다는 실력이 좋아진다. 즉 국내에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10대 후반에 미국 이민가서 사는 애를 못 따라간다는 말이다.
이중언어를 모두 잘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하나의 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면 다른 언어는 그저그런 수준이 된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쓰고 읽으려면 한국어를 포기해야만 한다.
장하준 교수는 영어로 글을 쓴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보다 영어로 글을 더 잘 쓴다. 이처럼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영어를 잘 하고 싶으면 조기영어 교육을 받을 것이아니라 평생을 영어에 투자해야 한다. 조금씩. 지속적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어릴 때 배운 영어가 남지 않는다.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데는 사실 굉장한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어 배울 때를 돌이켜봐라.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국어를 배운다.
온나라가 영어에 미쳤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반기문의 영어(실제로는 매우 고급스러운 영어임)도 허접하다고 폄하할 정도로 영어를 모른다. 발음만 그럴듯하면 영어 잘하는 줄 아는 천박한 수준이다. 그들의 자식들이 반기문보다 유창하게 영어를 배우게 하고 싶다는 꿈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영어를 '익히기에' 매우 좋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영어가 필요없는 나라! 아무도 영어책을 읽지도 영자신문을 보지도 영어로 글을 쓰지도 않는데 어떻게 영어를 잘 하는 나라가 되냐고요!! 이 아줌마들아!!
그렇다면 영어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11680시간.
매일 8시간. 4년 동안 해야 이 시간이 나온다. 말만에 해당한다. 글은 해당 없다. 글은 훨씬더 긴 시간 노출이 필요하다.
이만큼 노출되어야 한다.
영어를 잘 하고 싶으면 영어와 함께 살아야 한다.
영어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인 영어교육시간은 970시간이다. 필요량의 8%에 불과하다. 영어를 못하는 게 당연하다.
언어는 집중해서 배우는 게 좋다. 970시간을 10년에 걸쳐 흩어놓는것보다 집약시켜서 배우는게 더 낫다.
언어는 수없는 반복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나오게 돼야 한다. 오토매틱.
그래서 몸으로 익혀야 한다. 영어로 말을 해봐야 한다.
영어 필요성, 강도, 어떤 분야에서 어느 정도 능숙하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영어교육의 기준은 달라져야 한다.
미국보다는 유럽처럼 다양한 형태의 영어교육이 필요하다.(학문목적 영어교육, 과학기술용 영어교육, 제2언어로서의 교육 등) 결국 필요에 의한 영어교육을 해야 한다. 영어 능력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지 말라! 이게 이 책의 결론이다.
오랜만에 논문처럼 탄탄한 책을 읽었다. 이병민 교수님 감사합니다!
첨언 : 약처방을 잘 하고 싶은가? 그럼 하루 종일 약처방의 지식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결국 모든 분야에서 다 통하는 단순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