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31세에 뇌종양이 발병하여 20년 뒤에 사망한 어떤 프랑스 의사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이런 비슷한 책 중에 가장 감명깊었던 책은 '잠수복과 나비'였다.
그때 받았던 느낌이 다시 살아났다. 잠시 멍해진다.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야, 피곤하게 살지마. 과로하지 말고. 쉬어. 잘 먹고, 하루에 한번씩 조용히 욕실에서 명상도 하고, 천천히 살아라."
쉬는 것이 죄악처럼 받아들여지는 한국에서 이런 충고는 재벌집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여름 휴가를 7일간 가겠다고 하면 미친 놈 소리를 듣는 한국에서 과로하지 말라니!
컵라면, 과자, 통닭이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한 한국에서 거기에 대해 저항하라니!
그는 떠났다.
우리는 여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만약 내 노트북처럼(전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준다) 알게 된다면 인생은 악몽으로 변할 것이다. 여명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축복일까?
죽음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재앙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그것을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우리의 일상은 마치 우리가 만년이라도 살 것처럼 살고 있다.
일년치 달력을 꺼내놓고 한번 스윽 훑어보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 수 있다. 10년 20년을 어디다 써버렸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헤프게 없어진다.
우리 인생은 풀타임으로 돌아가는 캠코더와 같다. 편집은 없다. 테이크를 더 찍을 수도 없다. 오직 한번 풀샷으로 그냥 간다.
보통은 녹화버튼에 일시정지를 누를 수도 없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만큼은 잠시 일시정지 상태로 내가 지금까지 찍어온 테잎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수영장도 청소하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잠시 캠코더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찍어온 테잎들을 곰곰히 돌아볼 타이밍이 필요하다. 그래야 더 좋은 작품을 찍을 수 있다.<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