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환이 입장하면 진료시작하나?
아니다.
메시랑 같은 거다.
스트라이커는 고독하다.
약의도 고독하다.
메시는 경기 내내 어슬렁거리지만 노는건 아니다.
환자가 없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동의보감, 본초서적들은 너무 많이 봐서 색인이 필요없을 정도
미리미리 공이 어디로 올지 시뮬레이션해두고 평소에 체력운동을 해둔다.
어떤 약환이라도 오면 바로 어떻게 치료스케쥴을 잡을지 미리미리 내공을 쌓는다.
그런 훈련은 대부분 지루하다.
그런 공부는 대부분 지루하다.
공이 왔다.
환자가 입장했다.
가장 집중해야할 시간이다.
가장 집중해야할 시간이다.
막상 공이 발 끝에 닿으면 별로 할 게 없어. 투터치 이내로 골대로 날려야 한다.
막상 환자가 입장하면 별로 할 게 없다. 핵심을 간파해야 한다.
절대로 슈팅에서 실수가 있어선 안된다.
절대로 약환의 문진에서 실수가 있어선 안된다. 아마추어처럼 보여도 안된다.
골대 앞에서 너무 오래 질질 끌면 안된다.
단호하고 깔끔한 플로어 챠트로 문진을 마친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찰라의 슛
지루한 공부 끝에 찰라의 문진.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슛할 땐 힘을 빼라.
문진도 가볍게 단호하게 짧은 동작으로 마무리해야지. 결제시키려고 주절주절 이빨에 힘주지 마라. 시간낭비고 효과도 없다.
공이 발을 떠나면 들어가는지 지켜봐라.
문진이 끝나면 가만히 있어라.
골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는 니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환자가 결제하고 안 하고는 니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넌 그냥 최선을 다해 슛만 하면 돼.
넌 그냥 최선을 다해 문진만 하면 돼.
골을 잘 넣으려면 뭘 해야해요?
약처방 잘하려면 무슨 책 봐야돼요?
달리기를 잘 해야지.
기초 트레이닝을 받아.
길을 몰라요.
찾아 임마.
패스연습을 해.
기본서부터 읽어.
메시가 하루종일 대부분의 시간을 의미없는 클릭질로 보낸다면 저렇게 날라다닐 수 있겠나
니가 메시야. 니한테 공이 왔어.
너의 공간, 수비수의 위치, 골대와의 거리, 공받는 순간 너의 자세 그 순간 이미 골은 90% 결정된 상태야. 거의 끝난거지.
약환이 입장하는 그 순간은 약환을 진료하는 시작점이 아니다. 이미 거의 끝난 상태인거야.
지구를 벗어나는 로켓이 대기권에서 연료의 90%를 소진해야하듯이.
약환이 입장한 그 순간은 이미 성층권을 통과한거야.
그 순간 이미 어느 정도 발사 성공인지 실패인지 나오는거야. 거의 마무리 단계인거지.
메시는 80분을 어슬렁거리고 10분만 전력질주한다. 결정적 순간은 2-3초 내로 지나간다.
약환은 한의원 입장까지가 어렵지 일단 입장하면 초진은 짧고 깔끔하고 강렬하게 찰라처럼 지나간다.
그럼 그 어슬렁거리는 동안 노냐?
아니다.
노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약환이 입장하기 전까지 넌 뭘하냐? 그 기나길고 긴 시간 동안 노냐?
슛동작이 눈감고도 할만큼 숙달돼야 한다. 선수가 돼야 한다.
문진표만 제대로 작성되면 사실 물어볼 질문은 이미 다 정해진다. 선수가 돼야 한다. 선수끼리 왜 이래. ㅋㅋ
실제 환자 대면 초진 3분. 재진은 1분.
환자와 농담따먹기를 시작하는 타이밍에서 이미 내 머리속에 처방을 명확하게 룰아웃을 마치고 결정되었다. 이것이 바로 선수다.
환자가 문열고 나가는 순간, 접수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 몇초의 순간에 처방전은 프린트에서 나와있다.
그만큼 숙달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선수다.
환자가 진료받는 중에 니 머리속에서 처방의 후보군이 4-5가지 추려지고 문진이 끝날 즈음에 단 하나의 확실한 처방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너는 그 환자를 진찰한 것이 아니다. 그냥 딕테이션을 한거지. 이를테면 니가 아랍어로 코란을 한페이지 받아그린거랑 같지.
문진표를 백날 들여다봐라.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지.
그걸 들고 책 찾아보고 2시간 만에 그럴듯한 처방을 내잖아?
그건 이미 처방을 한게 아니다. 환자를 앞에 두고도 생각이 나지 않는 처방이 환자 가고 나서 2시간 뒤에 생각난다는 게 말이 돼? 안되지.
그건 마치 차승원이 어거지로 어떻게 아궁이로 빵을 만든 것과 같은 거지.
절대적인 학습량이 부족하면 약환을 맞딱뜨리는 순간 처방의 후보군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뭘 물어봐야하는지에 대한 감도 못 잡는다. 머리속은 하얗고 멘붕.
기본기를 익혔다고 치자. 그런데
숙달하는 연습이 부족하면 시간도 걸린다.
시간이 걸리면 너는 그 걸로 돈 벌어서 밥사먹기가 어려워진다.
대장내시경 하나 하는데 1시간 걸려봐라. 너는 곧 굶어죽는다.
패스받고 슛하는데 1분씩 걸리면 너는 슛할 능력이 없다는 증거이며, 절대로 스트라이커가 될 수 없다.
한약 처방내는데 1시간씩 걸리면 너는 절대로 약의가 될 수가 없고 약환자를 진료할 준비가 전혀 안되어있다는 거다.
그냥 편하게 조기축구나 해. 업으로 한다면 수미나 해. 존나 뛰는거지.
약처방을 잘해야겠다는 희망을 버려. 힘든 길이야. 그냥 침의로 평생을 살아가면 되는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