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 먹고 한의원 주변 동네를 한바퀴 걸었다.
햇살은 또 어찌나 따스한지.
남박이 딱 좋아할 날이네.
얼마전에 루이비똥 목도리를 하나 선물받았는데, 내 생애 이렇게 비싼 목도리는 처음 메본다.
그 목도리를 요새 주구장창 메고 다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목도리 자랑을 해야하는데
이제 남박이 없다.
bk : 야, 니 이 목도리 뭔지 아나?
남 : 뭐래? 외제라?
bk : 아이구 이 촌놈아 이런 무늬 들어가면 이게 루이비똥이라는기다. 니 들어봤나?
남 : 아, 좋은 거라?
bk : 야, 이거 전세계에서 제일 좋은 목도리야. 촉감이 달러. 함 만져볼래? 야, 니 손씻었나? 때탄데이.
남 : 뭐 이따래기 모가지 두르면 다 똑같지. 흐흐흐
bk : 야 니 엄마 선물로 루이비똥 목도리나 하나 사드려라. 가방은 니가 사주면 니 파산한다.
남 : 우리 엄마 근거 아 하는데?
남박 사진을 보면 늘 목도리가 있다.
추위를 많이 타서인가.
겨울에 목도리를 안 하고 다니는 남박을 잘 본 적이 없다.
한눈에 봐도 싸구려 목도리.
체크무늬는 왜 이리 또 좋아하는지.
누가보면 모눈종이 만드는 공장 아들인 줄 알겠다.
우리의 대화는 유머일번지에 나오는 오래된 꽁트처럼 아이템은 자주 바뀌지만 플롯은 늘 똑같다.
내가 조금 비싼 물건을 구입하고, 남박에게 보여주면서 자랑질을 하고 남박을 무시한다.
그 무시는 진짜 남박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지방에서 없이 자란 남자 둘이서 일종의 페이소스를 만드는 과정이다.
남박은 쿵짝을 잘 맞춰줬다. 브랜드를 잘 몰라도 늘 당당하게 내 자랑을 받아준다.
남박은 좀 더 모르는 척을 하고 나는 좀 더 오바한다.
결론은 니도 얼렁 돈 벌어서 비싼 거 많이 사고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내용으로 끝난다.
얼마전까지도 남박을 만나면 학생 때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 적이 많다.
원래 사진 찍는 걸 경기일으키듯 싫어했지만 특히나 내 블로그에 지 사진 쭈그리한거 좀 올리지 마라고 징징거렸다.
야, 근데 니 사진은 안 쭈구리한 걸 고르는 게 더 힘들다. 임마.
아무튼 옷 고를줄도 살 줄도 모르고.
누나나 엄마가 사줘야 입는....한국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인간.
이제 남박이 가고.
오늘 그 비싼 목도리를 모가지에 두르고 곰곰히 내 친구들을 돌아봤다.
누구한테 이 목도리 자랑을 할까.
자랑할 사람이 마땅히 없다.
다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고, 백화점 가서 옷도 척척 사고, 술도 잘 사묵는 친구들은 많다.
쭈구리가 없다.
지금이라도 핸드폰을 걸어 다짜고짜
"야, 니 루이비똥이라고 들어봤나?"라고 물으면
"와? 그거 먹는거라?"라는 답이 들려올 것 같다.
마치 오래된 콤비를 잃어버린 코메디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