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란 무엇인가

Essays 2016. 4. 23. 09:54

반응형

연기란 무엇인가.

 

연기란 이해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평가할 수도 비판할 수도 감동받을 수도 없다.

몰입이라는 것도 이해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쟤가 왜 우는지, 왜 웃는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데 몰입이 되나?

영화의 디테일이라는 것도 결국 얼마나 감쪽같이 이해를 시키느냐는 문제이다.

남편을 잃은 아내의 슬픔을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을 찍으면 된다. 그럼 그게 다큐멘터리다.

연기라는 것은 내가 남편도 없고, 잃지도 않았는데 마치 잃은 것처럼 관객을 이해시키는 과정을 말함이다.

 

그렇다면 누가 뭘 이해하냐

감독은 각본이 이해가 돼야 하고

연기자는 감독의 디렉팅과 각본이 이해돼야하고

관객은 연기자의 연기가 이해돼야 한다.

먹이사슬 같은 거다. 한 단계라도 삐끗하면 그 작품은 망한다.

 

결국 나쁜 연기란?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하는 척 '흉내'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큰 문제가 있다.

보통 공연을 올리는 연극무대를 예를 들어보자. 관객입장에서 그 공간이 이해가 되나? 안 되지.

전쟁을 주제로 한 연극이라고 할때, 거기가 전쟁터인가? 아니다. 거기는 대학로 극장이다. 모형총이랑 반합 갖다 놓는다고 관객이 봐줄 것 같은가? 어림없다.  관객은이해가 당연히 안 되지.

그래서 어떻게 하냐

 

불을 끈다. 관객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얘들아, 이제부터 여기는 대학로 극장이 아니라 전쟁터야.

연극에서 조명이 중요한 이유다. 다른데는 보지마. 관객님아. 여긴 공연장이 아니에요. 그게 조명이다. 여기 보세요 여기보세요.

 

이윽고 연기자가 나온다.

한눈에 봐도 연기자다. ㅋㅋㅋ 속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장을 하고 군복을 입었지만 그는 연기자다.

여기서 가장 큰 관객의 양해가 필요하다.

 

관객의 양해. 연극>드라마>영화 순으로 적어진다. 연극은 1회성이다. 관객의 매우큰 '양해'가 필요한 영역이다.

그래서 훨씬 더 연기자와 연출가가 연기 본연에 집중하고 노력해야 한다. 연극이 진검으로 싸우는 거라면 영화는 목검으로 싸우는 격이다. 언제든지 엔지 내고 이어 붙이면 된다.

연기자 혼자 온 역량을 발휘해서 관객을 '이해시켜야'하는 것이 연극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연극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아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잘 훈련된 연극배우는 드라마는 물론 영화연기는 더 쉽게 할 수 있다. 그런 분야는 관객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운 장치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선 실제 폭탄이 터진다. 하지만 대학로 극장에서 폭약 터트릴 수 있나? 없다. 고작해야 효과음이다. 당신이라면 실제 폭약이 터지는 "빽"을 갖고 연기하고 싶은가? 아니면 싸구려 스피커에서 '펑'소리 나오는 효과음 따위에 도움받으며 연기하고 싶은가.

 

문제는 어떻게 이해시키느냐다.

참 어려운 문제다. 눈빛 하나 잘못 보내면 관객은 확 깬다. 마치 최면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처럼. 연극 밖으로 나가버린다.

절대로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 존재하면 안된다. 연기자가 5초 머뭇거려야할 순간에 10초 머뭇거리면 관객은 이해가 안된다.

눈동자 움직임 하나 잘 못 굴리면 끝장이다. 영화는 자르면 된다. 사각의 프레임의 감독의 권한이다. 하지만 연극은 연기자의 연기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연극배우는 훨씬 더 집중해야 한다. 기회는 단 한번 뿐이다.

 

어떻게 하면 이해시킬까. 내가 하고싶은 말, 감정, 느낌을 어떻게 글자로 가득한 각본에서 연출가로 다시 연기자의 몸짓 언어를 통해 관객의 뇌까지 이해시키고 큰 울림을 주느냐. 그게 연기다.

 

연기는 훼이크가 아니다. 흉내내는 것도 속이는 것도 아니다. 할머니가 아기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연기다. 그 순간만큼은 아기가 할머니가 아니라 할머니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빠져든다.

 

그럴듯한 연기로는 불충분하다. 저게 연기하고 있네. 어, 이거 촬영한 거네. 이런 느낌 자체가 들면 안된다. 관객이 아예 까먹어야 한다. 지남력 상실. 그러니까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몇시인지조차 까먹어야 한다. 연극공연이 한창인데 관객 머리속에 지금 여기가 대학로 문화극장 지하 1층이고 지금 9시 반쯤 됐다는 지남력이 들어오면 그 연극은 망한거다.

 

연기는 그럴듯해서도 안된다. 액션이나 감정이 과장되어서도 안되고 모자라서도 안된다. 감정과 액션의 과잉은 관객에게 '어, 저 놈 저거 연기하네'라는 느낌을 주게된다. 기가막히게 적당해야 한다. 된장찌개 간 맞추는 거랑 비슷하다. 줄줄 짜고 무작정 통곡한다고 그 연기가 관객에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연기가 연기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관객을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에 연기란 참 어려운 것.<bk>

 

 

반응형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