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Reviews 2019.06.10 10:17
         

<>완벽한 토톨로지

봉테일답게 컷사이의 이질감도 전혀 없고 몇번의 위기는 있었지만 몰입을 깨지 않고 잘 넘겼다. 손석희 대역의 앉아있는 몸의 각도까지 연구했다고 하니.

 

<>풍자와 조롱

강자를 비판하면 풍자지만 약자를 비판하면 조롱이 된다. 후자는 금기시되지만 이 영화는 과감하게 약자를 조롱하고 있다. 기생충. 제목부터 하층민에 대한 조롱으로 시작된다. 참 대단한 감독이다. 조롱과 풍자사이의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데 감독이 워낙 거장, 원톱에 있으니 그 누구도 감히 '조롱'이라는 단어조차 못 꺼내게 만들어버렸다. 거기다 칸 트로피는 이중잠금장치!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수백만의 기생충들이 기생충 소리를 들으며 자기가 번 돈으로 티켓을 사고 극장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다 보고난 뒤에는 박수까지 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봉준호 만세! 국산영화 중에 이보다 유쾌한 영화는 여지껏 없었다.

 

<>하층민은 선량한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하층민은 그 동안 우리가 티비에서 봐왔던 하층민(예쁘고 선량하고 성실하지만 단지 부모가 가난하고 운이 나빠서, 편의점 알바하다가 신데렐라처럼 대기업 아들 실장님을 우연히 만나서 팔자 고치는 케이스)가 아니라 피자박스 하나 제대로 못 접고 동료를 음해하고 사기를 계획하고 살인도 감수하는 짐승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무능하고 계획도 없고 술이나 퍼마시고 잔머리나 굴리는 가히, 기생충이라는 단어가 어울릴법한 존재들.

너무 적나라하게 까발리니까 기분이 좀 그렇지? 그래서 "보는 내내 나는 덤덤하였다." "무산자끼리 싸우게 유도하는건 언론과 부자들이다. 송강호 가족들은 피해자라고. 사회구조가 잘못된거야." "오죽 힘들었으면 저렇게 했겠나?" "봉준호의 세상보는 눈이 따듯하지않고 냉정해졌다."는 등등의 개소리를 늘어놓지만 뒷맛이 더럽지? ㅎㅎㅎㅎㅎㅎㅎ

봉준호는 손석희와 인터뷰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를 다루는데 기존과는 다른 이상한 영화다. 기존의 나쁜 부자와 착한 가난한 자의 극단적인 설정보다 오히려 기생충이 우리의 현실과 더 비슷한 영화다."라고 기생충들에게 확인사살해버림.

 

<>비와 눈

이 영화에는 비가 자주 온다. 비가 올때마다 송강호네 집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비는 예상치 못한 변화다. 가장 대비되는 장면도 폭우가 쏟아지는 날 벌어진다. 부자집 어린이는 넓은 집 놔두고 아예 마당에 나가서 잔다. 하지만 송강호집은 침수가 되어 그야말로 개박살이 나고 체육관에서 '반강제로 노숙'을 당한다. 같은 비지만 타격의 정도는 다르다. 부잣집의 타격은 없다. 하나의 해프닝일 뿐.

사회의 어떤 변화든(그게 IMF건 남북통일이건 초대형태풍이건 폭염이건 최저임금 상승이건 간에 그 어떤 종류의 변화든) 하층민에게 타격이 막심하다. 송강호는 수십년간의 학습으로 깨달았다. 어차피 하층민들이 세우는 계획은 그대로 되지도 않고(변수가 많은데 대처가 거의 안되고) 오히려 자기 아들처럼 실패할 경우 더 큰 피해를 입으니까 그냥 아예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그냥 되는대로, 돈 생기면 맥주나 사먹고 닭이나 뜯으며 살아라고.

그런데 비가 아니라 눈이 오는 장면이 있다. 눈이 주는 묘한 느낌이 있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비는 시끄럽게 오지만 눈은 조용하게 내린다. 요란하지 않게 조용하게 진행되는 일이 진짜야. 마지막에 아들이 계획을 세울 거라던 장면에서도 눈이 소복소복 내린다. 눈이 주는 묘한 느낌이 있어.

 

<>아들의 웃음

아들이 대가리가 깨져서 병원에서 깨어난 뒤 웃기 시작한다. 경찰처럼 안 보이는 사람이 경찰을 하고 있고 의사처럼 안 보이는 애가 의사가 되어있다는 나레이션은 아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스스로의 판단이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는 자각을 암시한다. 계획 세우지 말라던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계획을 세워서 돌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갔건만 그 계획의 결말은 엄마의 실직, 누나의 죽음, 아버지는 수배자가 되어 반지하에서 지하로 쳐박혀버렸고 본인은 대가리가 깨졌다. 내가 알고 있던 부자의 모습, 가난한 자의 모습이 현실과 다를 수 있구나. 단순히 pretend해서는 상류층이 될 수가 없구나. 대역을 내세워서 결혼식을 한다해도 나는 상류층이 될 수는 없구나. 계획 세우지말라던 아버지 말씀이 옳았구나!라는 깨달음이 웃음으로 새어나온다.

모든게 다 망가진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깨달은 점은 '잠깐의 잔재주'가 아니라 긴 시간의 노력으로 진짜 '돈'을 벌어야 상류층이 될 수 있다는 것. 부자가 쉽게 되는 줄 알았니. ㅎㅎ

 

<>리스펙

제 아무리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도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려왔는데 유한양행 회장의 외동딸이라면 화장실에 가서 입이 째지도록 웃을 것이다. 누가 그 결혼을 말리겠는가? 건물주 욕을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건물을 갖고 싶다는 이중적인 욕망. 노동자 세상 노래를 부르지만 내 아들은 절대 노동자 안 시키련다는 사람들.

이 영화에서는 상류층과 하층민 사이의 투쟁은 없다. 실제 현실도 그렇다. 대부분의 투쟁은 끼리끼리다. 재벌회장은 회장끼리 경쟁하고 성형외과 의사는 성형외과 의사끼리 경쟁하고 한의사는 한의사끼리 싸운다. 아파트 경비는 경비끼리 경쟁한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투쟁의 강도는 급상승한다.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누구랑 주로 싸우는지 잘 살펴보자.

상류층은 하층민에 관심이 없다. 단지 맛이 어떤가 싶어서 짜빠구리 같은걸 '특식'으로 그나마 '한우'를 뭉테기로 썰어넣어서 그것도 한 젓가락 하고 말아버리지. 계급투쟁의 시대가 아니라니까. 그건 실패한 이론이라고. 기생충들아! 정신차리고 피자박스나 좀 제대로 접고 잔대가리 좀 굴리지 말고.

각자 선을 넘지말고. 서로 냄새를 맡을 수 없을만큼 적당하게 먼 거리를 둬라. 상류층은 상류층대로(페이에서 얼마 빼거나 냄새난다는 표정짓거나 그런거 하지말고) 하층민은 하층민대로.(주제넘게 할말 안 할말 하지말고) 각자 따로따로 사이좋게. 부딪치지말고. 서로서로 리스펙하며 살어.

특히 하층민들! 피해망상 좀 자제해라. 안 그러면 송강호처럼 감정적으로 행동하다가 신세망치고 지하실에 쳐박히니까! 그리고 그들의 피해망상으로 돈과 권력을 챙기는 판타지 딜러들 각성하고. 다 보고나니 판타지 딜러들에게 양 싸대기 날리는 영화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스펙합니다.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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