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가족여행을 갔는데 렌트카에서 문제가 생겼다. 내가 원래 예약했던 그랜져가 고장나서 스타렉스 12인승 밖에 차가 없다는 것이다. 

화가 난다

"에잇, 다 집어치워. 여행 안한다. 제주도 다시는 오나봐라."

펜션도 전화해서 취소하고 비행기표도 다시 끊어서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선을 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잘못은 렌터카가 했는데 피해는 엉뚱하게 가족들이 받았다. (본인 포함해서)

왜 이런 자학적인 행동이 일어나는가?

인간은 누구나 화가 날 수 있다. 화 뿐만 아니라 우울함, 슬픔까지 포함한 칠정은 적당해야지. '부적당한 화(너무 적거나 너무 많은)'는 일을 그르친다. 이 적당함의 미학을 맞추는게 어렵다. (젊을수록 익스트림한 것에 매력을 느끼거든)

요즘 대중매체에서 "하고싶은 말 하고, 니 감정 억누르지말고, 억울하면 반항하고 네가 하고싶은대로 맘껏 하고 살아라."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있어도 "적당하게 해라. 화 내도 적당하게!"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말은 인기가 없거든.

보통 사람은 사춘기 이후부터 선을 넘기 시작한다. 사춘기 이전에 선을 넘으면 아부지한테 두들겨맞을 수도 있으니까.

사람은 물건이든 타인이든 통제하며 살아간다. 그 통제의 영역 안에는 '감정'도 들어간다. 내가 술을 먹다가 술 먹는 것을 멈출 수 없을 때 우리는 술이 사람을 잡아먹었다! 알콜중독이다!라고 표현한다. 술이 사람을 부리는 것이다. 술 사오라. 술 마셔라. 술의 명령을 인간이 받는다. 인간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선까지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이 활화산처럼 폭발하면 그 감정이 사람을 부린다. 칼로 찔러라. 창문 열고 뛰어내려라. 감정의 노비가 되어 감정이 시키는대로 하다가 결국 스스로마저 불살라버린다.

중독도 그렇지만 (태어날때부터 알콜중독이나 분노조절장애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선을 넘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살짝 넘어본다.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자, 좀 더 크게 넘어본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아이는 커서 대범한 선넘기의 달인이 된다. 선도 넘어본 놈이 넘는다. 이런 건 어릴때부터 은연 중의 집안 분위기로 장시간에 걸쳐 트레이닝되는 것이라서 학원같은데 가서 '선 안 넘는 법'을 배울 수도 없다. 본데 없이 자라면 선을 잘 넘는다.

선을 살짝 넘어봤는데 결과가 좋다? 그러면 매우 조심해야 한다. 나중에 큰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만약 부모님을 모시고 간 여행이라면? 부모님의 재산이 천억인데 아직 안 물려주셨다면? 선을 넘을 수 있었을까? 못 넘는다. 선 한번 넘다가 천억이 날라갈 수도 있는데?

선을 넘는다는 것은 '힘의 과시'이다. 권력다툼. 봐봐. 내가 넘는다. 아무도 뭐라고 못하지? 내가 이런 사람이얌마.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엄마 아부지한테 대드는 것도 사실은 권력다툼의 일종일 뿐이다. 아버지 저는 이번 여행 안 따라갑니다.!!)

불행히도 능력이 뛰어나고 가진게 많을수록 이런 식의 '과시의 필요성'은 줄어든다. 이미 다 알아주니까.

정년퇴직하고 갑자기 와이프에게 잔소리와 짜증이 많아지는 아저씨들이 있다. 회사 다닐때는 뭐라고 해도 다 받아줄 아랫사람들이 많았는데 갑자기 이 세상에 내 말 들을 사람이 와이프 한명으로 줄어버린 것이다. 비극이다.

 

살다보면 갈등이 생긴다.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가 된 영역에서 국한해서 문제를 풀 것인지 확전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직원 이경희가 환자응대를 잘못해서 난리가 났다. 환자가 환불한다고 하고 업장을 엎어놓고 갔다. 직원들 모두 불러모았다. 이경희, 서연숙, 김기연. 사실 연숙이랑 기연이는 영문도 모르고 불려왔다.

"야, 너희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내일부터 매일 아침조회하고 간식타임 없고 월차 모두 반납이다."

징계는 경희에게만 일점사했어야하는데 확전을 감행. 기관총으로 모두 갈겨버렸다.

"원장님 저희는 뭘 잘못했는데요?"

"뭐? 지금 내가 말하는데 대들어? 너희들 내일부터 나오지마."

수류탄을 터트려버렸다.

 

선을 넘으면 보통 자학, 자기파괴로 이어진다.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던" 자학적인 행동들이 대부분이다.

칠정의 파도는 스스로를 집어삼킨다. 보복을 하고 싶으면 정확하게 받은만큼만 보복해야 한다. 그 선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여자친구랑 잘 사귀면 강물을 타고 슬슬 내려가는 것이다.

인간이라는게 대단한 능력을 가진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게 그저 강물흐르는대로 쓸려내려가는 것 뿐이다. 태풍오면 창문닫고 조용히 지내고. 비오면 우산쓰고. 너무 많이 오면 떠내려가고. 물론 누가 좀 더 열심히 헤엄치냐에 따라 결과는 좀 다르지만.

갑자기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한다. 어? 난 안돼. 계속 만나야겠어. 강물을 거슬러서 떠나는 여자를 쫓아 헤엄치기 시작한다. 잘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잘 안된다. 거기 서!!

그냥 물 흐르는대로 가는게 순리다. 간다하면 보내주고. 어 그래 잘 가라. 인연이 아닌갑네. 팩트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포기하고 받아들여야할 대상이다. 물길을 거슬러서 뭔가를 억지로 이루는 것은 처음에는 뭔가 대단한 역경을 거쳐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댓가를 치른다.

순리를 거스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강물을 벗어나 선을 넘는 애들도 간혹 있다.

여자친구가 만나줄때까지 집 앞에 가서 기다리고 학교도 자퇴하고 자해소동도 벌이고 대부분 '자기파괴'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공부를 못하면 기술을 배운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러 나간다.

능력이 없으면 능력이 없음을 일단 인정하고 능력을 키운다.

머리가 나쁘면 성적이 낮은 대학에 들어간다.

몸이 약하면 체력이 중요한 직업을 갖지 않는다.

잘못을 햇으면 감옥에 간다.

돈을 빌렸으면 돈을 갚는다.

이런 건 모두 순리대로 사는 삶의 방식이다.

문제는 '역리'의 삶에서 나온다.

머리가 나쁜데 억지로 의대에 집어넣으려고 하니 증명서를 조작해야하고 기껏 집어넣었더니 all D를 받고 집안 망신을 시키고 부모까지 고초를 겪는다. 의대 가는 대신 미용을 배웠으면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렸을텐데.

돈이 없는데 뉴욕에 집을 사려고 하니 비정상적인 검은 돈을 받게 된다.

잘못을 저질렀는데 쪽팔리긴 싫고 감옥가기도 싫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냥 쪽팔릴 일이 있으면 쪽팔리면 되고 빵에 가야하면 빵에 갔다와야지. 그게 순리다.

 

 

적당하게. 라는 말은 인기가 없고, 순리대로라는 말은 꼰대처럼 들리고,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은 우유부단해보이고 약해보이기도 한다.

 

선을 넘을 때 누군가 너에게 박수를 쳐줄 수도 있다. 그 박수를 조심해라. 통쾌함은 짧고 수습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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