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나 칼럼을 읽다보면 루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으흠, 다음 단락은 이런 이야기가 이어지겠군 생각하는 순간 여지없다.
이 책도 그렇다. 작은 것에 대한 관찰력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어지러운 파편 속에서 뼈다구를 추려내는 통찰력을 돋보이지만 루틴으로 가득하다.
루틴!!
2005년 어느날 나는 뭘 하고 있었다. (사소한 이야기를 적당한 대화를 따옴표에 담아 전개시킨 후에)
(자신이 발견한 통찰의 뼈다구를 서서히 풀어낸다.)
작은 결론이나 교훈으로 소결론을 맺고난 이후에 질문을 던진다.
000은 뭘까? (그리고 자문자답이 이어진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네이버 어학사전 인용 (뭐뭐라는 단어는 어떤 뜻이다.)
프랑스에서 발견된 동굴 벽화에는 (이런 식으로 신문기사나 책쪼가리들을 오려붙인다)
영화 <모모모모모모>에서 주인공 데미는 어쩌고 저쩌고...(영화 이야기)
그리스 신화의 모모모모는 어디어디에서 (신화 이야기)
영국의 한 과학자가 어쩌고 (신문쪼가리 인용)
소결론이 내려지면 다시 단락이 바뀌고 내가 모모모했던 것은 1995년이었다. 로 다시 곁다리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기가 실제로 겪었던 사건 + 자기의 통찰력이 담긴 생각의 사유과정 + 그걸 뒷받침하는 신문기사 영화 소설 쪼가리들을 적절하게 붙여서 적당한 크기의 글덩어리로 뽑아낸다. 도식적인 전개는 '글거리'를 모아서 억지로 이어붙인듯한 인상을 준다. 늘어진다. 아니, 그렇게 길게 썼는데 결론은 결국 그 얘기였어????
글은 대화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가 술취하면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하는 것처럼,(아, 아부지가 또 그 이야기하겠구나!) 실력없는 과외선생이 자기가 아는 파트 나오면 갑자기 흥분해서 열강하는 것처럼. 독자가 끌려가다가 정신이 번쩍 들면 작가의 입에서 나오는 글은 작가의 혼잣말이 되고만다. 글쓰기는 축구랑 같다. 빌드업만 주구장창하면 관중은 지루하다. 적당히 해라.
이 작가는 첫 문장을 잘 던진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때 정말 기가막히게, 정확한 크로스를 올린다. 거기까지다.
이 책을 읽고나니 성석제가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걸 새삼 알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