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정당성

Essays 2020. 6. 30. 11:01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두가지다

 

1.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 : 예를 들면 피부색, 인종, 성별, 머리색깔, 키, 외모, 부모의 재산, 공산국가의 출신성분 등 선천적으로 받은 것

 

2. 내가 선택하고 노력한 것들 : 올림픽 메달, 기말고사 성적표, 운동으로 만든 체력과 몸매, 면허증, 자격증, 졸업학위, 월급통장 등

 

인간의 평등권이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평가받고 차별받지 않는 것이지 내가 선택하고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에 대한 불이익이나 차별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차별은 '사회적 공적인 차별'이지 '사적인 호불호'와도 구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가슴큰 여자가 좋은데, 키 큰 남자가 좋은데... 난 스타벅스 라떼가 좋은데... 누가 나에게 너는 왜 사람을 가슴과 키로 사람을 차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자유의 영역' 즉 나의 호불호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답하면 된다. 그러는 너는 왜 투썸 카페라떼만 시켜먹느냐. 그것은 말차라떼를 차별하는 것 아니냐? 사적인 호불호는 사회상규가 허용하는 범위내에서(나는 살인이 좋다고 해서 그것까지 허용되는것은 아니다) 그냥 내버려두라. 그것이 바로 자유라는 것이다.

 

다만 공적인 영역에서의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말미암아 행해지는 차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여성이거나 쌍꺼풀이 없어서, 혹은 피부가 검은색이다, 부모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서울대법대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고 노력한 영역에서 평가를 받고 불이익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입학시험에서 성적을 못 받아서 낙방하는 것, 올림픽에서 달리기가 느려서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지 차별이 아니다. 정당한 대우이다. 모두가 좋은 직업, 예쁜 마누라, 금메달 목에 걸고, 벤츠 타고 좋은 대학 좋은 아파트에 살 수는 없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짐(예를 들면 인종, 키, 부모를 내가 선택할 수는 없지않은가)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그 짐은 과감하게 내려놓고(어차피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그 영역에서는 의미없다) 내가 노력하고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결과는(나의 대학입시결과의 처참함, 나의 업장의 황폐함, 나의 결혼생활의 고단함, 나의 무능과 게으름의 결과물 등 후천적 선택과 노력의 결과물들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훈련이 되어야한다. 그것이 성숙한 자들이 만들어가는 사회적 정의다.

 

 

로스쿨제도는 사법시험에 비해 사회적 차별을 완화시키는 제도일까? 심화시키는 제도일까?

당연히 7년간의 대학등록금을 부담할 수 있는 학생들만 지원이 가능하므로 차별적 요소가 상대적으로 심한 제도이다.

수시입학제도는 어떤가? 당연히 이것도 모의원 말대로 "상류층에게 더 열려있는 기회" 즉 전문학술용어로 '부잣집 돌대가리들'에게 더 유리한 제도가 맞다.

 

 

그렇다면 국가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좋은 인재를 길러내서 국민들 개개인의 삶의 효율성을 극대화시켜 국가전체의 번영을 이루는 것이다.

 

후천적 노력으로 얻은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의 매리트가 큰 사회 VS 부모재산이 많아서 선천적으로 받는 매리트가 큰 사회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인가?

 

 

부당한 차별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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