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유럽처럼

Essays 2020. 7. 2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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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에 퇴사하고 퇴직금을 모아서 유럽여행을 떠난 영숙이는 30분 단위로 스케쥴을 짠다. 마치 두번 다시 유럽에 못 올 것처럼 타이트하게 일정을 밀어넣는다.(실제로 그녀는 유럽에 다시 못 온다)

그런데 영숙이는 귀국만 하면 왜 스케쥴표가 주단위로 늘어나고 마치 '사랑의 블랙홀'처럼 매일매일을 무한대로 리필할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가. 간단하다. 두번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삶에 대한 바른 자세는 유럽에 갔을때의 영숙이가 맞다. 두번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유럽이 아니라 본인 인생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일의 행복을 오늘 끌어와서 느낄 수 없고, 행복과 불행은 들숨 날숨처럼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져간다. 그래서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대에 내가 위치해 있으면 그 시공간에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찾아(그게 일이든 밥먹는거든 운동하는거든 노는거든 잠자는거든, 공부하는 거든지 간에) 내가 그 시간 그 공간에서 할 수 있는한 최대한 집중해서 영숙이처럼 알차게 살아내야한다. 경주마의 눈가리개처럼 내일 일은 내일 걱정(시간의 집중) 해야하고 한국 일은 한국 가서(공간의 집중) 걱정하면 된다. 집에서 '휴식하는 나'의 시공간에서 한의원 일을 걱정하고, 한의원에 출근해서는 진료와 연구에 써야할 시공간에서 '휴식하는 나'의 모드로 탱자탱자 놀고, 아침에 와이프랑 싸웠다고해서 출근해서까지 그 기분 그대로 진료하고 나면 뒤죽박죽이 된다.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의 서랍(시공간)에 집중해야지. 다른 서랍을 자꾸 열어보지 말라. 출근하면 집이라는 서랍을 닫고 직장이라는 서랍을 열어야. 인간의 집중력은 나약해서 시간으로는 대략 30분 내외, 공간으로는 대략 3평 내외의 서랍만 열고 집중할 수 있다. 그 작은 영역에서 최선의 집중력을 쏟는 것을 반복해나가는 것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인간이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놀 때도 집중해서 알차게 퇴직금 털어서 유럽간 영숙이처럼 놀아야지. 침 놓으면서 카드값 걱정하면 뭐하냐. 아무 소용없지. 놀면서 다음달 호텔예약대기 해놓은 거 걱정하면 뭐하냐. 무소용이다. 걱정과 해결을 구분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 걱정해서 해결될 일이면 걱정해야지!!!

걱정해도 해결 안되는 거면 그 서랍은 닫아라. 모든 서랍을 열어놓고 살면 죽도 밥도 안된다. 인간은 한번에 한가지 일밖에 못한다.

내가 어떤 시공간에 머물기로 선택했으면 그 시공간에 해당하는 서랍만 열어서 집중하는 것.(독서실 가서 오락하지 않는 것, 한의원에 출근해서 인터넷서핑하지 않는 것 등등 아주 간단한 것들. 근데 서핑을 완전히 안 할 수는 없고 최소한 모니터가 3대라면 가장 가운데 큰 모니터에는 진료챠트, 두번째 모니터에는 진료와 관련된 자료, 가장 작은 모니터에 단톡방, 브라우저 등을 띄워야 적절한 서랍의 분배가 된다. 아마 이 간단한 모니터 재배치도 쉽게 못 해낼껄 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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