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치인이 늘 학벌없는 사회, 학벌주의를 없애야한다는 주장을 했다. 평생.

그의 주장은 이렇다.

한번 대학 졸업장을 따면 영원히 울궈먹고 독점적으로 자기들끼리 정보를 유통시키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특권사회를 형성한다. 민주사회에서는 기회의 균등이 중요하다. 대학에 순위가 매겨지고 줄을 세우니 교육이 망한다. 대학의 서열화를 없애야 한다. 서울대가 호산대보다 나을 이유가 있나? 호산대 나와도 얼마든지 성공하는 세상.

교육의 격차는 소득격차로 이어지고 다시 교육 격차로 대물림되면서 빈곤도 세습된다. 따라서 대학서열화부터 무너뜨리고 직업간 소득격차도 무너뜨려서 아무 대학이나 넣어도 우리 아이들 먹고사는 것뿐 아니라 세계 일류의 인재로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 없도록 우리 다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의 워딩은 이랬다.

"자녀를 아무 대학이나 보내도 되는 세상을 만듭시다"

하지만 학벌주의 타파를 부르짖었던 그는 정작 자신의 자녀는 동국대에서 연세대로 편입시켰다.

 

정치인 이전에 아버지로서 불가피했다고 본다.

 

 

 

그나저나 학벌은 왜 생겼을까?

우리는 왜 그 사람의 출신대학, 과를 따지는걸까?

사람의 능력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직원을 뽑아보면 더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똑같은 월급을 주는데 누구는 그 돈값도 못하고 누구는 몇배로 보답한다. 돈값을 못하는 직원은 해고된다. 해고와 재채용에는 비용이 따른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 우리는 면접을 본다.

하지만 피면접자와 가족이 아닌 이상 우리는 그 사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몇십년을 같이 살아도 파악하기 어려운게 인간이다) 우리는 최대한 10분 내로 그 사람이 우리 직장에서 '돈값'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러자면 그의 이력을 봐야한다.

서울대 법대 들어간 학생과 호산대 가정학과 들어간 학생이 면접을 보러왔다.

누가 더 성실할까?

누가 더 머리가 좋을까?

누가 더 상사 말을 잘 들을까?

누가 더 인내심이 많을까?

10분 안에 파악해보시오.

 

나는 수많은 간호조무사들을 채용해서 일을 시켜봤다. 중학교 중퇴, 시골 종합고교 졸업자, 실업계 고교 졸업자, 전문대 졸, 4년제 졸, 대학원생까지.

과연 결과가 어땠을것 같나? 나도 20대 때는 학벌사회 타파하고 실력위주로 사람대접받는 사람사는 세상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20년 동안 겪고보니 현실이 실력위주 사회가 맞아. 야, 지금 우리나라 사회가 실력위주 사회 맞더라구. 그리고 그 실력을 알아보는 아주 베이직한 바로미터가 학벌이더라고. 이 간단한 걸 그 정치인은 몰랐을까? 나보다 사회경험이 30년이나 더 많았는데??

내가 경남고 나왔는데, 중소기업 사장이라고 치자. 신입 면접을 2명이 왔는데 한명은 경남고, 한명은 서울과학고출신.

누가 더 내 말을 잘 듣겠나? 당연히 경남고 후배가 더 잘 듣는다. 부려먹기 좋은거다. 돈값. 돈앞에 학벌이 무슨 소용있나. 당장 부려먹고 써먹어야하는데. 내가 무역회사 사장이야. 당장 내일 미국에 영업뛰어야해. 그럼 서울대 나온 벙어리를 쓰겠나. 미국 거지를 채용하겠나. 당연히 미국거지를 채용하지. 내가 뉴욕에서 떡볶이 가게를 한다고 하자, 세네갈 출신 여자 대신 한국여자를 채용하면 내가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나?

한국사람들이 학벌에 미쳐있는 이상한 존재들로 그리지마.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 여기는 학벌에 미친 악마사회가 아니라고. 아주 평온하고 합리적인 사회야. 비싼건 이유가 있고 뽑히는건 이유가 있고 인기가 있는건 이유가 있다고.

아무리 중학교 중퇴라고 해도 옆집 한의원장님이 개런티를 해주면(그 직원 정말 괜찮다고 자기가 보증한다고) 그 직원은 채용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개런티가 존재하고 학벌이라는 건 그런 개런티 중에 하나일 뿐이다. 서울대학교 입학처장이 지능과 인내심, 성실함에 대한 추천서를 써준거지.

선거공보에 왜 후보자의 직업과 최종학력란이 있냐? 학력과 현재 직업을 통해서 개런티를 주는거야.

 

아무튼 학벌타파를 외치던 위의 정치인은 과연 호산대 학생을 비서관으로 뽑았을까? 안 뽑았을까? ㅎㅎㅎ

(참고로 그 분 밑에 있던 보좌관들이 서울대, 연세대 출신인건 정말 우연이겠지?)

학벌이라는 것은 이력서 상의 줄은 단 한줄이지만 그 몇 단어 안에는 굉장히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위의 정치인은 "대학 졸업장 한번 잘 따서 영원히 울궈먹는다"고 했지만 사람들이 그 졸업장 따기까지의 고단한 노고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하긴 표를 받기 위해 대중 앞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세요."라고 이야기하면 누가 표를 주겠나.

 

진정한 학벌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력란에서 대학 졸업장이 지니는 다양한 의미(지능, 인내심, 성실함)을 깨부수어야 한다. 졸업장이 의미없어 지려면 개나소나 서울대 가고 대학입시가 개판으로 치러져야 한다. 서울대 붙고 호산대 떨어지고 연세대 붙고 안동과학대 떨어지는 사회가 돼야 학벌없는 사회가 된다. 지금 아주 착착 진행되고 있다. 면접관들이 이력서의 학력란으로는 도저히 그 사람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을 때까지 우리는 대학입시 무력화를 위해 전진해야한다.

마치 이력서의 초등학교 졸업란이 면접관에게 아무 의미없는 것처럼 대학졸업칸도 그렇게 의미없게 만들어야한다! 그것이 바로 깨어있는 시민들이 학벌타파를 위해 나아갈 길이다.

물론 정치인의 자녀들이 깨시민 자녀들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더라도(전통시장 살려야한다면서 정작 본인은 선거시즌 아니면 시장 근처에도 가지 않는 정치인들처럼) 그럼에도 절대 동요하지마라. 호산대 나와도 서울대만큼 대접받는 실력사회가 될 것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있는 깨시민 자녀들이 서울대 대신에 호산대로 많이 들어가줘야한다. 서울대 갈 수도 있었지만 호산대에 들어가는 당당한 소신주의! 아름답지 않은가. 당신의 자녀를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제단에 바쳐라. 그것이 곧 민주사회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하이마트에 TV를 사러갔다.치자

삼성, LG, 대우 제품이 있었고 구석에 이노빌드 제품도 있었다.

삼성 78인치는 560만원, 이노빌드 78인치는 390만원이었다.

두 TV를 켜봤다. (실력을 체크해보는거지.) 둘 다 잘 나오더라. 그럼 된거다.  여기는 실력중심사회이니까.

당신은 가격도 더 저렴한 이노빌드 TV를 구매해야만 한다. 그래야 깨어있는 시민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아마 태어나서 이노빌드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 사람도 있을꺼다. 마치 호산대라는 대학이 있었냐는 반응의 면접관처럼.

뭐? 이노 뭐???? 이노빌드??????

다시 한번 새겨들어라.

이.노.빌.드.

아마 헛된 욕망이 막 꿈틀거릴 것이다.

좋은 제품을 싸게 사고 싶다는 욕망.

이왕이면 같은 월급 주고 좋은 직원을 채용하고 싶다는 욕망.

그것이 바로 적폐다. 반동분자들의 흑심이다.

그 욕망이 없어지는 날 학벌주의는 없어진다. 그날까지 우리 모두 전진 또 전진이다.

 

 

 

 

20세때 가슴을 울렸던 명연설문을 27년만에 다시 읽어보니

(이걸 읽고 감동받았다고??) 병신도 이런 상병신이 없었네. 어휴.

내가 20년전 그날 그 토론회장으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학벌사회 타파를 외치면서 왜 당신 아들은 연세대로 편입시켰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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