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나 음식, 물건은 [포장지]와 [알맹이]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뭐든 서로의 관계가 진전되면 포장지의 의미는 퇴색하고 알맹이만 남는다.
우리가 연애를 하면 10만원짜리 지갑을 사도 포장지에 엄청 신경을 쓴다. 리본도 달고. 편지도 쓰고. 껍데기에 치장을 많이 한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면 200만원짜리 코트를 사주는데 어라? 포장지가 없네. 쇼핑백도 없어. 옷만 덩그러니 준다. 섭섭한가? 아니다. 알맹이가 200만원짜리잖아.
나는 평소 동생과의 대화에서 상대방을 지칭하는 인칭명사로 "병신"을 애용한다. 야이 병신아. 라는 말을 꼭 빼먹지 않고 추임새처럼 붙인다. 포장지가 없는 대화법이지만 알맹이는 풍성하다. 검은 봉다리에 담긴 라이카 카메라 같은 것.
살다보면 비단에 싸인 고장난 야시카 카메라 같은 물건(사람, 음식 포함)을 접할 때가 있다. 포장지는 화려하고 달콤하고 자극적이고 재밌고 멋져보인다. 하지만 포장지는 언젠가는 벗겨지게 마련이고 알맹이는 뽀록이 난다.
부모의 잔소리. 역시 포장지가 개판이다. 하지만 알맹이를 헤쳐보면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부부간의 대화에도 포장지가 없는 경우가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농밀한 관계에서조차 알맹이는 버리고 포장지를 주워서 날카롭게 만든 뒤 스스로 가슴을 찌른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참으로 어리석은 자. 알맹이는 온데 간데 없고 포장지 이야기만 한다.
알맹이를 취하고 포장지를 버리라구 이 병신아.
오히려 누군가 너에게 와서 "저 원장님 하루 2시간 진료하고 월 페이 2천 맞춰드릴께요."라고 속삭이면 그런 포장지 안에는 대부분 쓰레기가 들어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도미노피자 한입 베어물면 짜릿하다 침이 싹 돌면서 기가 막힌다. 포장이 멋지다. 하지만 식도를 넘어가면 쓰레기다. 엄마가 해준 잡곡빵은 니맛도 내맛도 없지만 도미노보다 백배 낫다.
취미나 여가에서도 뭔가 재밌으면 조심해야한다. 특히 자극적인 포장지로 세팅된 경우에는 더욱 주의해라.
그 안에 예쁜 쓰레기가 들어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