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를 두려워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에게 재수란 곧 실패이며, 낙오를 의미한다. 삼수는 어떨까? 왠지 재수때보다는 좀 충격과 좌절이 덜한가? 아무튼 재수와 삼수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28수와 29수의 차이는 어떨까?
이제 나이가 47세야. 28수째야. 내년에 도전하면 29수야. 기분이 다를까? 어떨까?
내가 가진 골동품이 3만원원일 때 만원 오르는거랑 48만원에서 만원 오르는건 느낌 자체가 다르다. 근데 객관적 차이는? 동일하지. 그냥 만원이야.
자, 내가 좋아하는 5만원짜리 모자가 있는데 우리 집에서 버스타고 40분 걸리는 현백 지하 팝업상가에 가면 그 모자를 2만원에 살 수 있대. 그럼 가냐? 가지. 당연히 모자 사러 현백 나가지. 득템이잖아.
근데 제네시스 8947만원짜리 차를 사는데 집앞 대리점에서는 8947만원인데, 완전히 똑같은 차를 현백 맞은편 지점에서는 8944만원에 판대. 그럼 가냐? ㅎㅎㅎ 똑같은 거리에 똑같은 금액인데 가냐? 안 가냐? 대부분 안갈껄?
내가 한의대 다닐때 우리 학년에 의대 졸업하고 다시 한의대 입학한 형님들이 5명 있었는데, 그때는 스물둘셋의 눈에는 아니 어떻게 다시 학교를??? 굉장한 도전이라고 생각했거든. 특히 거의 40에 가까운 나이로 한의대에 베팅한 형님은 정말 존경스럽게 바라봤었는데, 지금 25년 쯤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내가 스무살 때 느꼈던 단위시간의 임팩트와 40대후반에서 느끼는 단위시간의 임팩트가 완전히 다른거야. 완전 로그챠트야.
왜 스무살 그때는 그깟 2년 3년 베팅하는 걸 그렇게 무서워했을까? 지금은 3년전에 내가 뭐 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나는데. 그날이 그날이고. 그해가 그해. 왜냐면 스무살은 20년을 살았는데 그에게 1년은 5%거든. 뭐라고?? 내 인생의 5%를 더 투자해야한다고?? 그러니 재수가 무섭지. 삼수하면 10%야. 스무살짜리한테 너 의대 다시 편입해서 4년 더 투자하라고 하면 자기가 살아온 날의 20%를 투자하라는 말과 같지.
아무튼 그땐 그랬지. 스물두살짜리 앞에서 스무살이 막 형님형님 하잖아. 본3,4들 동아리 회식때 내려오면 이건 뭐 허준이야 허준. 썰 푸는거 들어보면 무슨 전의감이 납셨어.
근데 이렇게 한번 상상해봐. 84살이 86살 앞에서 막 형님형님하고 군기 바짝 들어있으면 좀 웃기잖아. 84살이나 86살이나 뭐가 다른거야?
전공의 4년차가 3년차 불러서 막 뭐라하고 그러잖아. 개원 26년차가 개원 25년차 불러놓고 막 뭐라고 쫑크주고 하냐. 웃기는 일이지.
이게 나이들수록 세월이 빨리가는 이유랑도 연결되거든. 사람은 숫자와 관련된 건 로그챠트로 치환해서 감정을 느끼거든. 절대 이성이 아님. 주의바람.
월급 200만원 받다가 어느달에 300만원 받으면 날라갈 것 같아!
근데 개원하고 매달 2500쯤 벌다가 어느달에 2800을 벌면? 아무 느낌이 없다. 그러다가 수입이 줄어서 1500으로 떨어지면 화가 폭발적으로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