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란 무엇인가

Essays 2022. 8. 2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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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비를 맞고 기분이 좋아서 웃으면서 뛰어다니면 우리는 그 사람을 '미친년'이라고 부른다.

날씨가 흐리면 기분이 쳐지고 우울하고 외로워지고, 쨍쨍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슬픈 노래를 들으면 울적해지고...배고프면 짜증이 나고 마사지받고 온탕에 들어가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건 '미친년' 아닌가? 꼭 비가 올때 웃으면서 뛰어다녀야 미친년인가? 넓은 의미에서 우리 모두 미친년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감정은 나그네다. 손님이지 주인이 아니다. 감정이 주인행세를 하면 끝이 좋지 않다. 격분을 못 이겨... 어쩌고 저쩌고... 극심한 우울증에 극단적 어쩌고 저쩌고...

감정이 몸을 장악하게 내버려두면 감정은 통제받지 않는 행동을 내 몸에 저지른다. 그리고 떠난다. 마치 태풍처럼 언제 그랬냐는듯이 몸에서 빠져나간다. 손님은 떠나고 그 결과는 남겨진 주인의 몫이다. 격정적 화가 몸을 장악하게 놔두면 칼로 사람을 찔러죽이게 되고 그 감정은 곧 연기처럼 빠져나간다. 그리고 남겨진 몸뚱이는 감빵에 들어가 그 댓가를 치러야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살수가 없다. 내인생의 시나리오가 내 맘에 드는 경우는 잘 없다. 나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내가 원하지 않는대로 내 인생이 흘러가도 다 받아들여야한다.

인생에서 최선의 결과, 정답은 없다. 정답, 100점짜리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마라. 인간에게 불행은 언제나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나타나고 행복은 언제나 연기처럼 문틈으로 사라지고 난후에야 그 존재를 뒤늦게 깨닫는다. 내 인생에서 내가 <최고의 선택>을 하겠다. 그렇게 했어야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건 신의 영역이고 인간이 감히 넘볼 레벨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최고의 선택을 하지 못한다. 그 상황 그 당시 그 곳에서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최고랑 최선을 헷갈리면 인생이 고달프다. 착각금물이다.

베이스캠프는 나의 판단기준이 된다. 기준값. 거기서부터 등반이 시작된다. 본인 능력에 비해 베이스캠프를 높게 설정하면(서울대 합격) 베이스캠프조차 못 간다. 낙담하고 감정의 충격을 겪는다. 자기 수준에 맞는 베이스캠프 레벨을 설정해라. 베이스캠프를 잘못 설정하면 고통이 시작된다. 본인 현실의 수준에 맞게 베이스캠프를 점점 내려야할 때도 있다. 감정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이미 베이스캠프가 높다는 뜻이다. 낮춰라.

갑자기 어떤 이벤트로(대부분 나의 예상을 무너뜨리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벤트들) 인해 감정이 찾아올 때가 있다. 대부분은 나의 착각으로 인해 감정이 생겨난다. 나의 오해다. 잘못 이해한 거다. 현실감각이 결여된 것이다.실수다.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무슨 말이냐면 <정보의 부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무식하다는 것. 이해하는 범위가 좁다는 것. 정보가 부족하니까 지가 서울대 갈줄 알았던거다. 정보의 양이 더 많았다면 현실자각을 했을 것. 정보는 많을수록 현실감각이 정확해진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자주 해야한다. 시험에 떨어졌으면 분한게 아니라 <시험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 어떠어떠한 사유로 인해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분하거나 억울하거나 슬프거나 우울해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담백하게. <내가 예상하지 못한 무슨 이유가 있어서> <시험에 떨어졌구나><아 나의 예상이 틀렸구나.> 스스로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으면(현실감각이 결여되면) 예측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고 감정이 생긴다. 당연하게 (시험에 떨어질만하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하느냐며 의문을 품게 된다. 그 말은 곧 <나는 이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가 된다. 현실감각 상실의 고백.

2023년 12월 2일 궁금한이야기y 663회에서 16살 희수, 아버지는 일찍 사망. 엄마는 지체장애자. 13세부터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며 학교 다님. 누나는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중.  20살형들(아는선배, 전과자)에게 구걸, 앵벌이강요를 받고 담배빵(벗겨놓고 동영상촬영까지하고 유포협박), 폭행, 협박(신고하면 손가락자른다)에 시달리던 고교생이 옥상에 올라가서 자살했다. 그가 외삼촌에게 전화해서 "세상이 좆같아서 자살하려고 합니다."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세상이 ㅈ같다. 물론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 있지만, 16살이면 앞으로 얼마나 창창한가.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세상이 ㅈ같고 희망이 없다고 느낀 것이다. 왜곡된 정보(내 인생이 끝났고 영원히 저놈들한테 벗어날 수 없어)로 인해 어처구니 없는 판단(자살을 하자)을 내리는 것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어야한다. 지금 하는 결정이 얼마나 감정적이고 어리석은 결정인지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한다. 앞으로 인생이 그렇게 괴롭지 않고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정보를.

지금 나의 판단이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일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둬야한다. 겸손함!! 특히 평소의 나 답지 않은 선택(예를 들면 아들 귀빵맹이 날리고 싶을때)을 하려고 할때는 내가 감정에 내 몸뚱아리의 키를 넘겨버린게 아닌지 내가 정보부족으로 오판한게 아닌지(12.12반란처럼) 행동을 유보하고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야한다. 특히나 당장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면(자살을 당장 오늘 해야하는건 아니지 않은가)

어제는 광주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 6개월된 딸을 15층 창문밖으로 집어던진 엄마가 뉴스에 나왔다. 그 감정. 그격한 감정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감정의 파도가 지나면 느껴질 것이다. 아기를 던지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몇가지 정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를 알았어야한다. 그때 한번 참는 것이 얼마나 현명한 결정인지를.. 아기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죽이는 뉴스가 간혹 나온다. 왜곡된 정보로 인한 잘못된 판단의 끔찍한 결과물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가진 정보를 토대로 선택하고 판단을 내린다. 정보의 양과 질이 부족하면 1993년 12월 한의대에 원서를 쓰게 된다. 충분히 조사했어야하고 충분히 심사숙고했어야한다. 최소한 몇년동안 거기 다니는지는 알아야지. 않냐? 결혼도 마찬가지다. 입시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정보, 양질의 정보. 자살부터 자녀살해까지 모든 선택에는 부실한 질과 양의 정보가 존재한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동떨어진 기준값을 내 맘속에 갖고 현실을 맞딱뜨리면 그 갭을 타고 감정이 폭발적으로 올라온다. 그게 너의 실수다. 그냥 단순한거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의 부산물이 감정일 뿐이다. 아무 것도 아니야. 실수는 교정하면 된다. 현실에 맞게 나의 이미지를 다시 수정하면 된다. 수업료는 내야하지만 점점 더 현실적이고 객관화된 인지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짬이 쌓이는 것이다. 실수를 부끄럽게 창피해하지마라. 인간은 신이 아니다. 실수는 인간의 본성이다.

실수해서 오해하면 갭이 생기고 감정은 그 갭에서 생긴다. 갭은 비교에서 생기고 비교는 기준값이 있어야된다. 내 마음속 기준값 그게 감정의 궁극적 기원점이다. 비교를 안 할 수 있나? 없다. 인간은 비교없이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의 형용사는 모두 비교에서 만들어진다. 조용하다 시끄럽다. 덥다 차다 비싸다 싸다 힘들다 편하다 등등 모든 느낌은 비교에서 출발하고 비교할 줄 아는 것이 인간의 능력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된다. 과거에 집중하지마라.

비교를 통해 갭이 생겨서 감정이 닥치면 이렇게 말해라.

"어, 왔니? 그래 왔구나."

"조용히 얌전하게 있다가 나가라."

"난 너에게 내 몸의 통제권을 내 줄 생각이 없어. 네가 조금 있다 빠져나간다는 걸 알거든."

"나에게 이런 감정의 파도가 덮치는 건 당연한거야. 내가 이런 감정에 힘들어하는 건 당연한거야. 내가 인간이니까 어떤 인간이라도 지금 나와같은 조건 속에 놓인다면 모두가 다 나처럼 감정의 파도를 느낄꺼야."

태풍이 오면 집안에 가만히 있듯이, 감정이 마구 흔들어대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흔들면 흔들려줘라. 파도가 오면 그 파도를 둥실 타고 올라라. 절대 잘못된 반응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감정의 파도가 쓰나미가 사람을 덮친다. 그건 당연한거야. 왜 변화가 크잖아. 변화에서는 무조건 감정이 생긴다. 갭이 클수록 파고가 높아진다. 먼바다 15미터. 그때 절대 잊지말아야할 것은 내일은 14미터다. 그 다음날은 13미터. 그 다음다음날은 12미터.

그때는 이렇게 생각해라.

"아, 파도가 치는구나. 이것도 지나가리라. "

파도와 맞서지마라. 파도가 오면 몸을 거기다 실어라. 대신 절대로 그 감정의 파도에 내 몸뚱아리의 통제권만 안 내주면 된다. 키를 단단히 잡아!! 내 배를 지켜. 내 배의 키는 내가 잡는다. 대신 파도에는 휩쓸리지만 파도를 올라타서 넘어가면 그 다음 파도는 오늘보다 더 작은 파도가 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바다는 다시 잠잠해진다. 그 파도를 내 꺼라고 생각하지마라. 파도랑 배가 같이 똘똘말이 되면 안된다. 그러면 배가 침몰한다.

그 파도는 너의 배의 일부가 아니다. 외부물질이다. 지나가는 나그네다. 절대 그 파도(감정)를 너 몸뚱아리(배)의 일부라고 착가하지마라. 그러면 큰일난다.

슬픔이든 분노든 엄청난 감정의 파도가 밀어닥치면 가슴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라. "아이고 파도 세다. 우와아, 너무 슬프다. 내가 만든 갭의 크기가 엄청나구나. 나에게 이런 파도가 닥치는 건 당연한거야. 어떤 인간도 나와 같은 환경와 조건이었다면 이런 파도의 습격을 받을꺼야. 나는 이 파도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겠다. 내가 인간인 이상 이런 조건 하에서 이런 큰 파도가 생기는건 당연한 거니까. 억울하다 생각하지 말고 잘못됐따 생각하지말고 당연히 덮치는 파도라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 파도기 지나갈때까지 파도를 타넘되 파도와 함께 한몸이 되진 않을꺼다. 나는 내 배를 지키고 힘들어도 파도를 타고 넘을 꺼야. 내일은 더 작은 파도가 오니까. 그 다음날에는 파도가 더 작아진다..나는 나약한 인간이다. 인생이라는 영화에는 별의 별 일이 다 생길 수 있다. 꼭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당위와 이유는 없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영화의 제작자가 아니니까."

감정의 쓰나미 파도가 닥치면 그 파도 속으로 돌파하려고 하지마라. 그러다가 침몰한다 떠밀려가야한다. 일기를 써라.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 써라. 그리고 왜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지에 대해서도 써라. 써라. 종이에 써라. 그래야 파도와 배가 분리된다. "나의 감정은 지금 너무 슬프고 괴롭다."라고 일기에 글자를 써라. 본인의 감정을 기록으로 남겨라.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다.

정신과나 심리상담에서는 감정을 인정해주고 서포트해주지만, 어리석은 자들이다. 감정에게는 테이블을 내줄 게 아니라 외면하고 있다가 취미활동을 하면서 분리수거 쓰레기봉지에 쳐넣어버려야한다. 동의보감에는 칠정파트가 없다. 왜 없을까? 그런 녀석은 파트너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네가 앉을 자리는 없어. 넌 허깨비거든!

이런 허깨비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착각 속에 살아간다. 착각에서 벗어나야하고 항상 <나의 생각>을 <현실>에 가깝게 보정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조감시를 가질 줄 알아야한다. 마치 드론처럼 이벤트에서 멀어져서 전체적으로 조망할 줄 알아야한다.

그래야 신동엽 친구처럼 고부갈등을 신동엽에게 상담하는 참사가 벌어지지 않는다.

모든 이벤트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현실오판으로 인한 착각, 예상치못한 이벤트의 급습에 우리 몸에는 감정이라는 태풍이 스물스물 활동을 시작한다. 태풍은 언젠가는 빠져나가기 마련이고 그때까지 몸뚱이의 소유권을 놓치면 안된다.

모든 이벤트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이벤트의 뒷면을 다 알게 된다면 우리는 비로소 그 이벤트를 <이해>하게 되고 더이상 칠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비온다고 우울해하는 어린이를 본적이 있나? 그런거 없다. 뒤끝도 없다. 어린이들도 감정이 생기지만 감정의 찌꺼기가 몸에 머물지 않는다. 그게 건강한 상태다. 뒤끝없는 삶. 날씨,노래 등에 영향받지 않는 몸.

우리는 순수한 상태, 건강한 상태에서 점점 더 미친년의 상태로 노화한다.

우리는 미친년인가? 아닌가? 어느 정도의 미친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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