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퍼런스의 중요성

Essays 2022. 12. 2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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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곤로라고 있었다. 아궁이 대신에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획기적인 조리기구.

우리집에 곤로가 없어도 옆집에도 없고 마을 전체에 곤로를 가진 집이 한군데도 없으면 <우리 집에 곤로가 없다는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다른 집은 다 곤로가 있는데 우리집<만> 없으면 큰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곤로가 없다는 사실 자체는 그대로이지만 <레퍼런스 : 기준>이 바뀜으로서 인간은 우울함, 슬픔, 분노같은 감정을 느낀다.

인간은 피사체가 아니라 레퍼런스에 의해 감정을 느낀다. 배경이 얼마나 피사체를 도드라지게 만드느냐가 핵심요인이다.

내가 서울대 의대 나온 성형외과의사라도 내 동기들의 경제상태 즉 레퍼런스에 따라 내 기분이 달라진다. 내 상태가 아니라 내 동기들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

MTB동호회에서 사고가 나면 델몬트를 나눠먹지만, 로드 동호회에서 사고가 나면 육개장을 나눠먹는다. 같은 자전거인데 왜 결과값은 다른가?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건 자전거의 문제가 아니다. MTB는 배경이 나무나 비탈길이지만 로드는 트럭과 버스가 배경이다.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같은 <자전거> 동호회가 아니다. MTB가 패러글라이딩이면 로드는 윙슈트다.

우리는 팔이 2개다. 그런데 팔이 3개가 되면 얼마나 편할까? 운전하면서 핸드폰도 할 수 있고 나이프 포크 숟가락까지 동시에 쥘 수 있다. 좋아? 좋지. 팔이 4개면 더 좋지. 그런데 아무도 "아, 나도 팔이 3개였으면 좋겠다."라고 고민하지 않는다. 아, 나는 왜 팔이 2개일까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내 팔이 불편하냐 더 편하냐가 아니라 다른 놈들의 팔이 어떤 상태냐. 몇개냐가 더 중요하다. 거기서 감정이 생긴다. 팔이 3개면 더 편리하지만 하나를 빨리 잘라내버리고 싶다.

효성여대 약대를 갔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아무런 감정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배경1 : 아버지 서울대의대, 엄마 서울대의대, 언니도 서울대의대의 배경이면 죽을만큼 괴롭다. 집안에서 꼴통된다.

배경2 : 친가 외가 모두 합쳐서 사촌 중에 대학을 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 집안의 천재가 태어난 거다.

꼴통과 천재는 배경의 문제일 뿐이다.

이 배경은 타인이나 다른 가정뿐 아니라 <과거의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선천적인 청각장애인보다 성인이 된 이후에 청각을 잃어버린 사람이 더 감정의 고통을 크게 느낀다.

내가 어떤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 감정의 원천이 되는 <레퍼런스 기준>이 어떤 건지 살펴라.<bk>

 

그리고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배경을 지워라. 피사체를 "단독"으로 평가해보라. 배경없이. 증명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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