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니콜라스입니다. 저에게는 20년지기 친구가 있는데 얼마전에 이 친구와 동업으로 사업을 하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서로 다툼이 있었습니다. 저랑 크게 다툰 날, 만취 상태로 집으로 귀가한 친구가 자살을 했는데 죄책감에 너무 괴롭습니다. 도와주세요.
-니콜라스, 지금 매우 힘들겠군요. 자살은 이승을 떠나는 것입니다. 도망치는 거에요. 아주 멀리 떠나는 거에요. 그럼 왜 떠날까요? 자살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살이라는 행위를 <자신의 고통>을 끝내줄 해결책으로 설정하고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가 죽으면 이 문제가 해결되겠지? 내가 죽으면 나의 이 고통이 중단되겠지? 우리 가족이 다시 행복해지겠지? 내가 죽으면 나의 부채가 해결되겠지? 내가 죽으면 내가 저지른 범죄가 모두 해결되겠지?" 친구분이 자기가 해결해야할 문제를 해결해놓고 떠났나요? 자살로 그 문제들이 해결됐나요? 아니죠. 그냥 남은 자들에게 문제풀이 맡겨두고 떠나버렸지요? 오히려 자살로 문제가 더 복잡해졌죠. 자살은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해결책이 아니에요. 본인의 고통은 중단되었지만 남은 가족들이 행복해지는게 아니라 영원히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거죠. 혼자 편안하게 아주 멀리 도망가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밀항 같은 거에요. 에라 모르겠다 난 너무 힘들어서 떠난다. 자살이라는 밀항을 시도할 때는 나는 더이상 고통받기 싫다는 이기적인 욕망(이라기보다는 본능)이 깔려 있어요.
아주 먼 곳으로 떠나버리는 것. 그게 자살이에요. 죄책감 갖지 마세요. 그 분은 그곳에서 편안하니까. 고통받지 마세요. 그분은 그 곳에서 편안하니까. 부도나서 필리핀으로 밀항한 사람에게 우리가 죄책감을 갖나요? 죄책감은 도망자의 몫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다양한 레벨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은 뒤에 합리적 판단 없이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착각으로 자살을 실행하게 됩니다.
자살행위의 핵심은 두가지 입니다.
1. 본인이 스스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2. 정작 본인은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힘도 없다.
해결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해결하려는 욕망만 있을때 (그럼 사람들은 보통 책임감 있는 사람처럼 보여짐) 자살이라는 참혹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 이성이 잠시 착각하여 오직 자신의 <고통>에만 매몰되어 합리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저지르는 참극입니다.
살다보면 부당한 폭력, 빚, 가난, 갑작스런 사고, 장애, 사별 이런 심각한 문제들이 한 개인이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몰려올 때가 있지요. 그때는 해결해주는 사람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화장실 하수도가 막히면 설비 아저씨를 부르고 집에 불이나면 소방관을 불러야 하는 것처럼 본인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빨리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각 분야에 해결사를 잘 배치해두고 있어요. 본인이 치킨집 하다가 망하잖아요? 그럼 자살하지 마세요. 그거 해결하는 거 아닙니다. 밀항하는 거지. 밀항자가 되고 싶어요? 그냥 장사하다 망했으면 판사님이 시키는대로 하세요. 판사님이 다 해결해줍니다. 내가 해결 안해도 돼요. 나 혼자 도주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을 뿐더러 도망자가 되어 주변인들을 힘들게 할 필요가 없어요. 교도소 가는게 대수입니까? 신불자 되는게 대수입니까? 교도소 가고 신불자 돼도 세상이 끝나지 않고 내 인생이 망하지 않아요. 하물며 고등학교를 중퇴한들, 사업이 망한들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이 세상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심지어 부모조차도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 이 세상에 나 혼자다는) <착각> 속에 자살만이 나의 고통을 끊어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착각>하여 실행하게 되는데 도와줄 사람, 해결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고 또 찾고 찾으면 찾아집니다. 불행히도 친구분은 그런 지혜는 없었네요. 죄책감 갖지 마시고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밀항한 친구의 선택을 (동의하지 않지만) 인정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