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양한방 협진이라는 단어가 업계에 돌아다니는 걸 보니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친한방이라는 단어와 함께 한양방협진이라는 단어도 한의계의 서글픈 현실을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단어다. 이 단어들이 없어진 날이 한의학이 꽃피우는 날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양한방 협진으로 밀고 있는 의대가 어디 있나? 차병원이랑 대구가톨릭 정도이다. 의대 서열에서 보면 마이너 오브 마이너 오브 마이너 대학이다. 이게 의료계의 메인 이슈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태생적으로 양한방 협진은 성공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협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컬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없다. 펜대만 굴리고 있으니 자기 머리속으로 "어? 이렇게 하면 양 한방이 사이좋게 환자를 치료하겠지?"라는 망상으로 펜대를 열심히 굴린다. 지금 50년째 펜대를 굴리고 있다. 쓸데없는데 시간낭비 하지말자.
보통의 의료인들은 상병을 중심으로 분과가 된다. 그러니까 행정구역 나누듯이 환자를 '내 환자' '니환자' 이렇게 갈라먹는다. 다리 부러지면 그 사람은 '정형외과의 소유'가 된다. 자기 꺼라고!!! 자기 소유의 환자라고!!!
만약 어깨 빠져서 응급실 갔는데 당직의가 어깨를 넣어주면 정형외과 전공의가 내려와서 "야 이자식아 니가 뭔데 내 환자를 가로채??"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내 환자'라는 개념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환자가 발생했다면 그 환자가 '내 환자'인지 아닌지에 따라 대응이 달라진다. 같은 의사라도 다른 직업이라고 보면 된다.
니꺼 내꺼 개념이 확실한 영토싸움이다. 하나의 상병이라도 더 뺏으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누가 더 돈되는 상병을 많이 가져가느냐 싸움이다.
자, 한의학의 위치를 냉정하게 보자. 굉장히 독특한 업종이다.
한의사는 굉장히 많은 영역에서 양방과 환자를 공유한다. 정형외과, 마통과, 내과, 이비인후과, 정신과 등등과 엄청 많이 엮여있고 그 과 전문의들과 사이가 특히 안 좋다. 특히 구조적으로 한의와 양의는 한 지붕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는 남한과 북한처럼 연락창구가 없다.
있긴 있다. 누구냐? 상대방에서 치료가 잘 안되는 환자들이 비둘기처럼 날아와서 소식을 전해준다. 한의원에는? 양방에서 치료가 잘 안되는 환자들이 주로 와서 양방 다녔는데 효과가 없었다고 소식을 전한다. 양방에서 치료가 잘 된 환자를 한의사는 만날 수가 없다. 안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의대 교수님들이 수업시간에 양방의 무효용성에 대해서 간증하는 분들이 많다. 통계 모집단의 오류일 뿐이다.
이건 양방도 마찬가지다. 양방에서 보는 환자들은 한의원에서 치료가 잘 안돼서 찾아간 케이스가 많다. 그러니 양방 의사 입장에서는 "뭐야? 얘들. 치료 하나도 못 하네. 한의학 이거 순 사기꾼들이구만."
당연하지. 한의원에서 치료가 잘 된 환자는 양방에 발길을 끊는다. 내가 지금 끌고가는 환자들 중에도 숱하다. 그리고 그 소식을 그 의사는 못 듣는다.
서로 환자를 공유하는 양방과 한방 사이에서는 이런 식으로 치료가 잘 안된 비둘기들만 집중적으로 날아들다보니까 상대 진영에 대해 편견이 생긴다. 한의학은 사기꾼들이야! 정체모를 풀뿌리 달여먹는거 그거 효과 없어. 양방 스테로이드 범벅이지 그거 뭐 효과 있냐? 마치 이탈리안 쉐프가 중국집 주차장에서 음식물쓰레기만 뒤적거리게 된다. 한참 쓰레기통에서 헤매다가 중국음식 다 쓰레기더라고 하는 격이다.
그렇다면 아예 환자를 공유하지 않는 영역의 의사들과는 어떨까? 사이가 좋다기보다는 서로 무관심하다. 치과랑 한의과는 서로 잘 안 싸운다. 환자를 두고 영토전쟁을 벌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의학과? 당연히 무관심하다. 어떨 때는 사이 좋다. 둘 사이에 환자를 두고 치고박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협진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트랜스와 컨설트로 이루어진다.
트랜스는 이거 내 환자 아니야. 니 환자야. 그러니까 니가 치료하는게 낫겠다고 하는 <양도행위>이다. 환자를 넘겨받는거다.
컨설트는 뭐냐. 이건 내 환자 맞아. 난 양도하지 않을껀데. 이 환자가 국소적인 부차적인 문제가 하나 있는데 이건 <니가 잘 하니까> 네가 날 좀 도와주고 다시 환자를 나에게 넘겨줘. 이게 컨설트다.
이 두가지 행위가 일어나려면 <뭔가 다른 과 의사보다 동띠기 잘 하는 무언가> 있어야한다. 그래야 컨설트와 트랜스가 이루어진다. 그게 협진이야. 협진이 별거냐? 지금 협진이 졸라 잘 되고 있어. 그럼 한양방 사이에 왜 협진이 안되냐!!! 그건 문화적인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냥 한의사 <동띠기 잘하는 무언가>를 어필하지 못해서 그래. 그게 다야. 동띠기 잘하는 무언가가 있잖아? 복지부에서 협진료 만원씩 더 주고 별 지랄 안해도 알아서 트랜스 컨설트가 물흐르듯 이루어진다.
나의 할아버지는 배도 만들고, 구들장도 깔고, 농사도 짓고, 오징어도 잡고, 가구도 만들고, 손주 장난감도 만들어주고 모든 걸 다 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동띠기 잘 하는 무언가>가 없게 된다. 뭐든 대충 하긴하는데 동띠기 잘하는게 없어. 이건 현대인의 삶이 아니다.
의료인이 자꾸 나의 할아버지저처럼 박학다식, 두루뭉실하게 다양한 상병을 본다고 하면 뭔가 문제가 있고 그러면 트랜스, 컨설트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43년전에는 산부인과 의사가 내 귀수술을 하기도 했다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라니까.
박학다식이 아닌 심학소식을 해야 <동띠기 잘하는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고 그런 소문은 반드시 퍼지게 되고 그런 국한된 환자를 자연스럽게 트랜스와 컨설트받게 된다. 국한된 환자를 많이 보는 것. 심학소식만이 현대 의료인이 먹고 살 길이다.
의료일원화니 한양방 협진이니 그런 구호들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하는 부산물이지 그게 목표가 돼서 억지로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국가적으로 그럴 돈 있으면 심학소식하는 애들한테나 더 투자해라.
의료인은 박학다식해지면 안된다.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러지 마라. 심학소식해야 먹고 살 수 있다. 뭔가 내가 동띠기 잘하는 한 칼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