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사님, 저는 부산에 사는 헬렌입니다. 제 딸이 얼마전에 시집을 갔는데 어느날 사위랑 다퉜는지 사돈이 우리 집에 찾아온 적이 있어요. 사돈이 막말을 퍼붓고 갔는데 딸 교육 제대로 못 시켜서 시집 보냈다고 험한 말을 하고 갔습니다. 그날 이후로 너무 속상하고 분하고 억울해서 잠이 안 옵니다. 사위가 맘에 드는 것도 아닌데 그 날 이후로 사위 꼴도 보기 싫네요.
- 안녕하세요. 헬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군요. 딸이랑 사위가 이혼은 안 했다고 하니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네요. 그러면 사돈 관계도 깨진 게 아니네요. 아직 서로 사돈이네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건 C등급의 가족이에요. 사돈은 사은품처럼 따라온 거죠. D등급. D등급부터는 거의 남이에요. 그러니까 예의를 차리죠. 사돈이 집에 오면 난닝구 입고 지낼 수가 없죠. 남이라서 그래요. 사람은 가까울수록 옷을 벗어요. 집에서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면 걔는 나와 A급 가족이에요.
이건 인간의 본성과 연결되는 문제에요. 만약 사위와 딸이 물에 빠지면 본인은 누구 먼저 구할거에요? 구명보트에 자리가 딱 1개야. 그럼 누가 태워요? 당연히 딸 태우죠. 남의 딸보다 자기 아들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에요. 본인도 그러하잖아요. 본인은 왜 차별해요? 차별하는게 당연한 거에요. 그래서 사돈이 자기 아들만 감싸도는건 인간의 본성이다. 이상한 게 아니에요. 다만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은 그 본성을 잘 누르지만 그렇지 못하면 본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사돈은 후자겠죠. 좋게 말하면 솔직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무례한 거에요. 무례함과 솔직함은 원래 같은 거에요.
지금 헬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은 사돈이 아니에요 본인이에요. 본인이 사돈에 대해 갖고 있던 상(이미지)가 현실과 달라서 지금 본인에게 스스로 고통을 주는 거에요. 본인 사돈은 본인이 생각하는 이미지의(잘 교육받고 교양있는) 사돈이 아니에요. 본인이 사람 잘못 본거에요. 내 잘못이니까 내 감정을 억누르고 참아라? 그것도 아니에요. 이건 '인간의 자유에 대한 존중'의 문제에요. 본인이 화나고 속상한 감정을 억누르라는 말이 아니에요. 사돈이 저렇게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거에요. "어, 그래. 너는 이런 사람이구나. 그래, 너는 이렇게 살 자유가 있지. 오케이. 너는 이렇게 살아라." 그러면 끝이에요. 우리가 길가다가 누가 소주 먹고 노래부르며 길바닥에 누워자고 있으면 "아저씨 왜 이랍니꺼? 일나보소."하고 개입하나요? 아니죠 그냥 지나가죠. 남이니깐요. 누구나 술먹고 길에 누울 자유가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점은 사돈이 불법적인 일을 했느냐에요. 사돈집에 와서 막말하는게 불법이에요? 경찰부를거에요? 아니죠? 그러면 아무 일도 아니다. 즉 경찰부를 일이 아니다.는 건 우리사회가 용인하는 범주에 들어가 있는 <라이프 스타일의 영역>에 속하는 언행이에요.
그리고 이 언행으로 인해 사돈관계의 '본질'이 훼손되었느냐?에요. 훼손됐어요? 애들이 이혼했어요? 이제 그 사람이랑 나랑 사돈이 아니에요? 끝난거에요? 아니죠. 아직 사돈이에요. 자녀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 사람과 나는 여전히 사돈이에요. 즉 본질이 훼손되지 않았어요. 식당에 갔는데 종업원이 음식을 쾅 하고 놓고 갔어요. 그것도 서빙이라는 본질이 훼손된 게 아니에요. 음식을 줬잖아요. 돈 안 낼거에요? 돈 낼꺼잖아요. 그럼 나도 식당이라는 본질이 훼손되지 않았다고 동의하는 거에요. 편의점에서 할배가 와서 '야, 담배 하나 내놔봐'라고 하고 담배값 주고 가면 편의점이라는 공간의 본질이 훼손됐어요? 아니죠. 물건주고 돈받으면 본질을 지켜준거에요.
이건 그냥 재수 없는 거에요. 내가 생각했던 사돈이 아닌거에요. 그냥 운이 없이 얻어걸린 거에요. 그 뿐이에요. 아, 내 사돈이 저런 사람이었구나. 저 사람의 특이성을 내가 미처 몰랐네. 하고 넘어가면 돼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범위 안의 언행을 문제 삼으려면 그건 내가 그 사람의 부모이거나 스승이어야해요. 본인이 사돈의 부모에요? 아니죠. 월권하지 마세요. 의미없어요.
아무 일도 아닙니다. 흔한 게 일어나는 재수 없는 일일 뿐이에요. 그냥 마트에서 물병을 하나 샀는데(딸이 결혼을 했는데) 1+1으로 딸려온 사은품(사돈)이 불량품 돗자리인 거에요. 웃어넘기세요.<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