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

Essays 2023. 3. 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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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장을 구경하러 간다.

식장을 예약한다.

양가 부모님에게 통보한다.

양가 친척, 친구들에게 결혼식 날짜가 알려진다.

다시 식장을 취소한다.

양가 부모님에게 취소를 통보한다.

 

늑대들은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 늑대는 늘 통보한다. 자기가 무리의 우두머리인 것처럼 행동한다.늑대에게 중요한건 서열이다. 보편적인 룰과 위계질서를 깨면서(엄마를 밟는다) 통쾌하게 가족내 자신의 권력서열을 재확인하고(사춘기 애들의 '나 밥 안 먹어."와 같은 기전으로) 자존감을 얻는다. 사회적으로 실패한 빈곤한 늑대일수록 가정에서의 서열에 집착한다. 늑대들에게 가족간 '상의'는 곧 굴종이고 서열의 하락을 의미한다. 부모와 상의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귓구멍이 퇴화되어 있다. 발톱만 발달한다. 늑대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오로지 스스로 100% 결정한다. 외로운 존재들이다. 무리생활을 할 줄 모른다. 타인의 의견을 듣지 않고 판단력과 신중함이 부족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오사마리가 안 되고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어린 늑대일수록 그렇다. 사춘기의 늑대들! 자신만만했던 늑대는 자신이 가족들에게 <통보>하고 진행시킨 이벤트가 폭망했을 때 비로소 큰 수업료를 지불하고 하나씩 세상을 배워나간다. 자신만만하던 어린 늑대는 세상에 나가서 개박살나고 쥐터진 뒤에야 겸손해진다. "어? 장난 아니네."

늑대와 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커뮤력에서 나타난다. 일본에서 말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상대방의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이 전하고자하는 메세지를 캐취하는 것. 내가 하는 말과 행동으로 나의 메세지를 상대에게 트러블없이 적절하게 잘 전달하는 것. 이것이 커뮤력이다. 엄마가 계란후라이를 안 해줬다고 책가방을 집어던지면? 나의 메세지가 전달이 되긴하지만 적절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방을 던진 행위로 말미암아 새로운 트러블을 만들어낸다. 커뮤력이 낮은 자녀이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자살이라는 행동으로 보여주면 좋은 커뮤력을 가진 사람일까? 아니다. 자살은 또 다른 트러블을 만들어낸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란? 안개비에 옷이 젖듯이 자연스럽게 너와 나의 생각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식(말과 행동)으로 나의 생각을 상대에게까지 공유시키는 능력. 무리생활을 축구같은 팀플레이이고 씨름처럼 한쪽이 지고 한쪽이 이기는 개인전이 아니다. 늑대에게는 서열이 중요하기 때문에 늘 무리생활(가정이든 직장이든)에서 누가 누구보다 위에 있고 누가 누구 말을 들어야하는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결혼한 친구에게 "야야, 남편에게 지면 안돼. 휘어잡아. 초장에!" "여자는 말이야 절대 니가 먼저 고개 숙이면 안돼." 등등의 조언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늑대다. 커뮤력이 없는 친구다.

늑대는 커뮤력이 없기 때문에 무리생활을 할 수 없다. 혼자 살아야한다. 머리 나쁜 늑대들은 더 어려움을 겪는다. 전문직을 획득하지 않는 이상 직장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고 그저그런 경제력으로 아싸로 가난하게 살아간다. 늑대들은 행동에 예측이 안되고 선을 쉽게 넘고(사회생활에서 엄청난 핸디캡이다)  스스로 '예측안됨'을 즐기기까지 하고 즉흥성에 매력을 느낀다. 야! 오늘 당장 바다보러 떠나자! 엄마 나 다음달에 결혼해! 담주에 바로 일본 갈래? 엄마가 우리 결혼 반대하면 난 집나갈꺼야! 같은 걸 쿨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본인의 장점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늘 주위를 불안하게 한다. 반면 피디들은 굉장히 좋아한다. 어떤 출연자가 서울법대 나온 변호사인데 변호사를 그만두고 와이프와 상의없이 라면집을 차린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피디들이 찾는 늑대다. 에측이 되는 뻔한 출연자는 시청자들이 외면한다. 재미없다. 튀는 희한한 캐릭터는 티비로 볼 때는 재밌지만 실제 일상에서 엮이면 굉장히 피곤해진다.

그런에 왜 누구는 개로 자라고 누구는 늑대로 자라는가? 개로 트레이닝되기 위해서는 가정 내에서 수년에 걸쳐 "보고" 배워야한다. 가족끼리 상의해서 결정하고, 서로 애로사항을 공유하고 함께 해결하는 모습을 어릴때부터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가족이라는 현대인의 무리생활 하는 법을 훈련받아야 하는데 그런 걸 가르쳐주는 부모가 없다면 형, 언니, 대학선배, 회사형님이라도 대신 가르쳐줘야한다) 부모가 무능하거나 존재감이 없거나 늑대의 삶을 살아가면 자녀도 늑대로 길러진다. 전문학술용어로 '본데 없이 자란다'라고 표현하고 4글자로는 안하무인이다.

늑대의 잘못인가? 아니다. 그들도 피해자다. 부모를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고 본인도 어떤 경우에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보고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몰라서 못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영원히 귓구멍이 막힌 외로운 늑대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늑대는 외롭다. 개와 달리 실수할 가능성은 더 크다. 크게 저지르고 크게 박살난다. 인생의 진폭이 크다. 피곤한 삶이다.

개와 개가 만나면 안정적이다. 무리생활에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하는지 트레이닝이 잘 되어 있다.

늑대와 개가 만나면 늑대의 충동성을 개가 잡아준다. 늑대는 개의 행동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며 서서히 교정해 나간다.

늑대와 늑대가 만나면 파멸만 있을 뿐이다.

 

나는 늑대인가? 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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