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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 머리가 너무 아파서 관사에 들어가서 누워있었는데, 김여사가 부른다.
"김선생님, 환자분 오셨어요"

나가보니 술한잔 걸친 할아버지가 할머니랑 같이 서 있다.
"들어와서 앉으세요."

"할아버지 제일 불편하신 게 뭐에요?" (항상 진료시 첫멘트)

이야기를 들어보니 낮에 술먹고 경운기 바퀴에 깔렸다고 함.
발을 살펴보니 부러진 것 같진 않으나, 그래도 사진 찍어보자고 하니, 돈이 아까워서 안 찍겠다네. 그리고 이거는 피빼면 낫는 거니까 무조건 피를 빼달라고 성화. (이동네 환자는 주로 이런 식으로 다쳐서 온다. 전에는 염소뿔에 무릎을 받친 할배가 온적도..ㅡㅡ;;;)

일단 할아버지를 배드에 누워계시라고 하고 할머니를 진료했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하도 술먹고 속썩여서 홧병도 있는데다가, 밭일하다가 나무에 부딪치고, 골다공증이 심하고 요추가 주저앉아 허리가 펴지지 않고. 여기 죽전리 지소 한의사(김씨를 지칭.)가 침 잘놓는다고 동네에 소문나서 한번 와봤다고 함.(면내에 한의사가 김씨 뿐이라서 생긴 현상일 뿐.)

"이야, 할매 안 아프신데가 없네요." (주로 하는 멘트: 환자들은 이런 멘트에 흡족해한다. 특히 고생한 할머니들.)

한창 진료하는 중에 어떤 아줌마가 진료실 안으로 불쑥 들어온다.
"아이고 선생님, 이거 하나만 팔아주시오. 날도 덥은데 하나만 팔아주이소."

그러면서 보따리에서 양말이랑 허리띠랑 주섬주섬 꺼내놓는다. 양말 다섯켤레를 내 책상 챠트 옆에 놓으면서 꼭 사라는 거다.

아니 진료중에 이게 뭐하는 짓이람!! 예전 같았으면 격분했겠지만, (이런 경우 보통 접수보는 간호사는 죽음이다.)
여사가 깜짝 놀라서 들어왔다.
"아지메 거기 들어가면 안된다니깐요!!!! 나가세요!"

아주머니가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진찰받던 할매가 자기가 물건을 사겠으니 어디 풀어놓아보라네...헐헐.
"우리도 장사해서 먹고사는데 하나 사줘야지요."

허허허, 이동네 분위기는 이렇다.
아주머니가 하도 권해서 김씨도 허리띠를 하나 샀다. 그 흔한 소가죽도 아니요. 비닐허리띠에다가 버클에는 버버리도 아닌 Beverly라고 새겨져있다.(넘 솔직한거 아냐? 비벌리라니..비벌리힐즈 아이들도 아니고..)ㅡㅡ;; 이거 오리지날 짝퉁이네. 60대 촌로의 기지바지에 어울릴법한 허리띠.

'아버지 갖다 드려야겠다.'

할매의 진료와 쇼핑이 대충 끝나고 할배를 읍내에 데리고 가려고 했다.

"할배는 여기 이래 있어갖고 안되고 제가 태워드릴테니 읍내가서 사진 한번 찍어보십시다."

할배가 읍내가면 돈든다고 안 간다고 버티길래, 그러다가 빙시된다고 겁을 확 줬더니 그제서야 일어서시네.
근데 내가보기에도 그리 부러진 것 같진 않긴한데...할배가 읍내 살았으면 그냥 가시라고 했을텐데, 워낙 촌동네에 사는 할배에다 나이도 많고 지소까지도 할매가 겨우 경운기 몰고와서 읍내까지 가려면 한시간은 족히.. 걸릴판.

할배를 차에 태우고 읍내 정형외과로 가는 와중에 할매와 할배가 하도 선생님 퇴근하는데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하시길래.

"할배가 전혀 미안하실 필요 없어예. 저 관사에서 살거든요. 핫핫핫 그리고 이거 다 할배가 세금내서 우리 지소 세우고 저 월급주거든요. 저는 그 월급받아서 차에 기름넣고, 그리고 이거는 제가 당연히 해드려야하는 일이고요."

할배 사진보고 뼈다구들이 무사한 걸 확인하고 지소로 돌아와서 당귀수산이랑 할매 약을 쥐어주고 보냈다.
할배는 모자를 벗어서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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