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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없다. 『아직 안 온 사람이 몇 명이냐?』 『11명입니다.』
8시20분. 한두명을 빼고 다 있어야 할 시간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교실은 조용하다. 막막하다. 그냥 아득할 뿐이다. 정적속에 시간이 흘러갔다. 복도에는 학부형들이 아이를 찾아 허둥거리는 모습이 잦아졌다. 운동장에는 차량들과 헬리콥터의 엔진소리, 그리고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먼 나라의 풍경처럼 보인다.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를 발견한 어머니가 이름을 부르며 뛰어 들어온다. 그리고 아이를 부둥켜 안은 어머니가 운다. 아이도 엄마를 따라 운다. 그들의 울음에는 소리가 없다. 눈물만 줄줄 흐른다. 교실안은 일제히 정적속에 휩싸인다.
『선생님 주선이가 옵니다.』 한 아이가 침묵을 깨고 소리 지른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을 향한다. 주선이가 교실을 들어선다. 아이들이 박수를 치고 책상을 두드린다. 기쁨이다. 살아서 나누는 만남의 기쁨이다. 교실은 천국이다. 『선생님, 정두, 승현이, 재덕이는 집으로 돌아갔어요.』 자리에 앉은 주선이가 말한다. 아이들은 다시 손바닥을 두드리고 책상을 치고 고함 지른다. 그들도 살아있다는 환호성이다. 그래, 다 무사할거야. 그때, 아이들이 다시 조용해진다. 자리에 앉아 책상정리를 마친 주선이가 그제서야 울고 있는 것이다. 비참한 모습을 본 슬픔이 먼 거리를 지나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이들의 소식을 다 전한 후 비로소 눈물로 흐르는 것이다. 교실은 일순, 지옥으로 변한다. 숨소리만 들린다. 모두들 주선이의 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들의 눈동자는 이승 사람들의 눈길이 아니다.
한 선생님이 나를 찾는다. 『정은이가 중상이다. 지금 성심병원에 있으니 학부형에게 연락해라.』 교무실로 뛰어갔다. 생활지도 자료 카드를 찾았다. 아버지가 없다. 어머니 혼자다. 어머니의 직업란에 회사원으로 적혀 있다. 집으로 전화를 했다. 예상대로 전화를 받지 않는다. 교실로 왔다. 내가 없는 사이 장난을 치던 아이들이 내가 들어서자 후다닥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정은이 동생을 잘 아는 사람?』 창훈이가 나온다. 동생이 다니는 국민학교로 가서 어머니 호출기 번호를 알아오게 했다.
그때 집으로 갔다던 형석이가 교실 문을 들어선다. 아이들이 다시 박수를 친다. 교실은 천국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밝고 맑은 웃음이 가득하다. 복도 저쪽에서 통곡소리가 들린다. 밖을 내다보니 아버지가 자식을 껴안고 큰소리로 울고 있는 것이다. 세범이가 들어오고 뒤를 이어 세기가 들어온다. 아이들이 다시 박수를 친다. 학교에 입학한 후, 가장 즐거운 교실로 변한다. 이제 네 사람이 남았다. 돌아올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누군가 석술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내 귀에 대고 말한다. 아이들은 그 작은 귓속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교실이 갑자기 지옥이다. 『선생님,민철이와 병광이와 석술이는 만나서 같이 학교에 옵니더.』 어느 학생이 말한다. 그렇다면 민철이와 병광이도…. 그때 민철이 어머니와 병광이 어머니가 잇달아 들어선다. 『우리 아이 없어요.』 운다. 울면서 살아있는 아이를 찾아 막막히 걸어간다. 이 세상에 누가 우리처럼 지옥과 천국을 수십번 드나드는 경험이 있는가?
이렇게 하루 낮이 가고 우리들은 동료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아이들이 안치된 병원을 찾아 다녔다. 거기에 아이들은 사진으로 있었고, 어머니들과 그 가슴 찢는 울음소리가 우리들에게 못으로 돌아오는 것을 봤다. 모든 사물이 가까이 있을때 분명하지 않듯이 우리의 슬픔은 그냥 어른거림일 뿐이다. 이글을 쓰는 동안 비로소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닐 때 시야가 늘 흐려있었던 것은 결코 차 유리가 깨끗치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이제 안다.
이종수 선생님.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하던 당신. 언젠가 술자리에서 시를 알고 싶다고 하던 당신을 잊을 수 없을 거요. 바둑을 두면 언제나 나의 상대를 훈수하여 나를 약올리는 그 얄미움을 잊지 않을 거요. 저 세상에 같이 간 우리 아이들 잘 부탁해요. 42명의 아이들. 저 세상에서까지 「과밀학급」이네요. 그래도 열심히 가르쳐 주길 바래요. 수학만 아니라 당신이 가진 푸근한 인간미까지 가르쳐요. 우리들은 우리들보다 먼저 간 아이들을 당신에게 맡긴 이상, 조금은 위안을 합니다.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저주하게 될 것같아 환장하겠어요.
병광아 민철아 석술아, 교무수첩에서 너희들의 사진을 찢어 낸다. 너희들의 모습을 부모님과 선생님과 친구들의 가슴에만 담기에는 너무 곱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담기 위해서란다. 영정을 만들어 누군가 너희들 앞에 진심으로 울며 속죄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너희들은 그러면 그 사람들을 사랑으로 용서해 주도록 해라.
같이 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선생님들은 영원히 너희들을 잊지 않을 거란다.〈구석본·영남중 교사·시인〉
[조선일보] 1995-04-30 (사회) 기획.연재 23면 2471자 영남중 구석본 교사 숨진 제자들에 눈물의 편지
◎병광아… 민철아… 석술아/
고운 모습들 잊지않으마/
같이 떠난 친구들과 오순도순 지내라/
이종수 선생님 우리 아이들 잘부탁해요/
“하필 그 시간에 같이 만나서 등교하다니…/
어머니들의 통곡 우리에겐 못으로 박혀”
8시20분. 한두명을 빼고 다 있어야 할 시간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교실은 조용하다. 막막하다. 그냥 아득할 뿐이다. 정적속에 시간이 흘러갔다. 복도에는 학부형들이 아이를 찾아 허둥거리는 모습이 잦아졌다. 운동장에는 차량들과 헬리콥터의 엔진소리, 그리고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먼 나라의 풍경처럼 보인다.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를 발견한 어머니가 이름을 부르며 뛰어 들어온다. 그리고 아이를 부둥켜 안은 어머니가 운다. 아이도 엄마를 따라 운다. 그들의 울음에는 소리가 없다. 눈물만 줄줄 흐른다. 교실안은 일제히 정적속에 휩싸인다.
『선생님 주선이가 옵니다.』 한 아이가 침묵을 깨고 소리 지른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을 향한다. 주선이가 교실을 들어선다. 아이들이 박수를 치고 책상을 두드린다. 기쁨이다. 살아서 나누는 만남의 기쁨이다. 교실은 천국이다. 『선생님, 정두, 승현이, 재덕이는 집으로 돌아갔어요.』 자리에 앉은 주선이가 말한다. 아이들은 다시 손바닥을 두드리고 책상을 치고 고함 지른다. 그들도 살아있다는 환호성이다. 그래, 다 무사할거야. 그때, 아이들이 다시 조용해진다. 자리에 앉아 책상정리를 마친 주선이가 그제서야 울고 있는 것이다. 비참한 모습을 본 슬픔이 먼 거리를 지나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이들의 소식을 다 전한 후 비로소 눈물로 흐르는 것이다. 교실은 일순, 지옥으로 변한다. 숨소리만 들린다. 모두들 주선이의 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들의 눈동자는 이승 사람들의 눈길이 아니다.
한 선생님이 나를 찾는다. 『정은이가 중상이다. 지금 성심병원에 있으니 학부형에게 연락해라.』 교무실로 뛰어갔다. 생활지도 자료 카드를 찾았다. 아버지가 없다. 어머니 혼자다. 어머니의 직업란에 회사원으로 적혀 있다. 집으로 전화를 했다. 예상대로 전화를 받지 않는다. 교실로 왔다. 내가 없는 사이 장난을 치던 아이들이 내가 들어서자 후다닥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정은이 동생을 잘 아는 사람?』 창훈이가 나온다. 동생이 다니는 국민학교로 가서 어머니 호출기 번호를 알아오게 했다.
그때 집으로 갔다던 형석이가 교실 문을 들어선다. 아이들이 다시 박수를 친다. 교실은 천국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밝고 맑은 웃음이 가득하다. 복도 저쪽에서 통곡소리가 들린다. 밖을 내다보니 아버지가 자식을 껴안고 큰소리로 울고 있는 것이다. 세범이가 들어오고 뒤를 이어 세기가 들어온다. 아이들이 다시 박수를 친다. 학교에 입학한 후, 가장 즐거운 교실로 변한다. 이제 네 사람이 남았다. 돌아올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누군가 석술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내 귀에 대고 말한다. 아이들은 그 작은 귓속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교실이 갑자기 지옥이다. 『선생님,민철이와 병광이와 석술이는 만나서 같이 학교에 옵니더.』 어느 학생이 말한다. 그렇다면 민철이와 병광이도…. 그때 민철이 어머니와 병광이 어머니가 잇달아 들어선다. 『우리 아이 없어요.』 운다. 울면서 살아있는 아이를 찾아 막막히 걸어간다. 이 세상에 누가 우리처럼 지옥과 천국을 수십번 드나드는 경험이 있는가?
이렇게 하루 낮이 가고 우리들은 동료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아이들이 안치된 병원을 찾아 다녔다. 거기에 아이들은 사진으로 있었고, 어머니들과 그 가슴 찢는 울음소리가 우리들에게 못으로 돌아오는 것을 봤다. 모든 사물이 가까이 있을때 분명하지 않듯이 우리의 슬픔은 그냥 어른거림일 뿐이다. 이글을 쓰는 동안 비로소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닐 때 시야가 늘 흐려있었던 것은 결코 차 유리가 깨끗치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이제 안다.
이종수 선생님.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하던 당신. 언젠가 술자리에서 시를 알고 싶다고 하던 당신을 잊을 수 없을 거요. 바둑을 두면 언제나 나의 상대를 훈수하여 나를 약올리는 그 얄미움을 잊지 않을 거요. 저 세상에 같이 간 우리 아이들 잘 부탁해요. 42명의 아이들. 저 세상에서까지 「과밀학급」이네요. 그래도 열심히 가르쳐 주길 바래요. 수학만 아니라 당신이 가진 푸근한 인간미까지 가르쳐요. 우리들은 우리들보다 먼저 간 아이들을 당신에게 맡긴 이상, 조금은 위안을 합니다.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저주하게 될 것같아 환장하겠어요.
병광아 민철아 석술아, 교무수첩에서 너희들의 사진을 찢어 낸다. 너희들의 모습을 부모님과 선생님과 친구들의 가슴에만 담기에는 너무 곱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담기 위해서란다. 영정을 만들어 누군가 너희들 앞에 진심으로 울며 속죄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너희들은 그러면 그 사람들을 사랑으로 용서해 주도록 해라.
같이 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선생님들은 영원히 너희들을 잊지 않을 거란다.〈구석본·영남중 교사·시인〉
[조선일보] 1995-04-30 (사회) 기획.연재 23면 2471자 영남중 구석본 교사 숨진 제자들에 눈물의 편지
◎병광아… 민철아… 석술아/
고운 모습들 잊지않으마/
같이 떠난 친구들과 오순도순 지내라/
이종수 선생님 우리 아이들 잘부탁해요/
“하필 그 시간에 같이 만나서 등교하다니…/
어머니들의 통곡 우리에겐 못으로 박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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