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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은 종합병원에서 버림받은(?) 환자들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0.5차기관이면서 동시에 4차의료기관이다...ㅡ.ㅡ
4차면 4차다워야하는데 4차답지 못한 한의원이 많다. (나름대로 각자의 메뉴얼대로 천차만별의 진료를 하는 우리 모두가 '작은 박치완'들이 아닐까?)
'낫을지 안 낫을지 모르지만 일단 열심히 한번 해봅시다.'
이거 정말 4차의료기관다운 무책임한 멘트 아닌가.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
이거 구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돈받고 치료해주는 업종은 짜다리 열심히 안해도 좋으니 무조건 잘해야 된다.
의료인에게 있어서 검증되지 않은 강한 신념은 정말 무서운 것. 거기다 그가 국가에서 발급한 종이까지 소지하고 있다면 거기다 환자가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나약해져있다면 가히 폭발적인 위력을 갖는다.
종합병원에 한의진료부가 들어가야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음은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발췌한 것을 다시 퍼옴. ㅡ.ㅡ;;;;;;
김영갑. 제주도에서 활동한 사진작가로 얼마전 루게릭병으로 사망함. 그가 양방에서 치료받아도 죽었을 것이고 한방 제일의 명의에게 갔어도 죽었을 것이다. 다만 언제 어떻게 지내다가 죽었느냐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중략) 그때부터 루게릭 병과 나의 눈물겨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대로 한방체질치료에 들어갔다. 한의사는 내가 사람의 여덟 가지 체질 가운데 금음에 속한다고 진단했다.
한방치료를 시작하고부터 일년동안은 채소와 생선만을 먹었다. 민물 생선을 먹어서도 안 되고 뿌리채소 또한 먹을 수 없는 것이 금음 체질이다 또 어떤 약도 먹어선 안 되기 때문에 루게릭 병의 진행억제제인 미즈텍마저도 금지되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서울에서 지냈다. 예약 한시간전에 한의원에 도착해서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다. 가끔 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짧게는 몇달, 길게는 몇년씩 침을 맞는 중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년넘게 치료에 매달렸다는 중환자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해 종합해보니 모두 효과를 보았다고 했다.
오분정도 치료받기 위해 스물네시간을 기다렸다 침을 맞고 나면 손하나 까닥할 힘도 없어서 하루 스물네시간을 꼬박 누워 있어야만 했다. 매주 서울과 제주를 오르내려야 하는 번거로움때문에 치료를 포기할까도 싶었다. 한의사가 치료비 달라는 소리 않을테니 조금만 더 해보자고 말렸다. 의사의 말에 믿음을 갖고 매달렸지만 상태는 더욱 악화되기만 할뿐이었다.
급기야 혼자서는 서울을 오르내릴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반년넘게 한주도 거르지 않고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기는 커녕. 걷는것도 힘에 부쳤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근육통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결국 침술 치료를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
그후로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삼십분이상 의장에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의자 등받이나 벽에 기대어 근육이 아파 못 견딜 지경이었다. 반듯하게 누워 손하나 까딱하지 않으면 겨우 통증이 가라앉는듯 했다. 그러나 손가락이라도 조금 움직일라치면 또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어느 한군데가 아픈 것이 아니라 전신이 못 견디게 아파왔다. 조심스럽게 모로 누워보지만 그러고 나면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호흡이 불안정했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이대로 정말 죽음을 맞게 되는가 싶은 절망적인 날들이 계속되었다.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 전국을 헤멘지 어느덧 삼년, 그러는 동안 치료는 커녕 기력만 소진하고 말았다. 폭풍이 치는 그믐밤, 망망대해에 나 홀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어둠뿐, 별빛이라도 보인다면 직감으로나마 방향을 잡으련만 칠흑같은 어둠이다. 보이지도 않는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며 기력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날이 밝기를 기다리자. 대책이 없을때는 무대책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침술치료는 단념했지만 체질치료는 포기하지 않았다. 금음체질인 나에게는 어떤 약도 허용되지 않았다. 특히 녹용은 극약이었다. 그런데 어떤 한의사는 적극적으로 녹용을 권했다. 또 어떤 한의사는 금음체질에 독약이라는 인삼이나 영지버섯, 상황버섯따위를 권했다. 나 같은 체질에는 산삼마저도 효험이 없다고 했다. 영양제도 복용해선 안 되는데 그나마 비타민C 제제만큼은 허용되었다. 과일도 사과,배,호두,잣만 가능하여 금지되는 것이 더 많았다. 한의사가 지시하는대로 따르고 육류를 비롯한 유제품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자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무더위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의자에 앉는것도 힘에 부쳤다. 고개를 똑바로 세울수가 없어 인터뷰 사진을 찍으려면 늘 고개가 삐딱했다. 경추3,4번이 튀어나와 고개를 똑바로 하려면 손으로 받쳐야 중심을 잡을수 있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바닥난 체력때문에 누워있어도 식은땀이 흘럿다 어쩔수 없이 육류를 먹기로 했다. 그리고 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먹기로 햇다. 영양제도 먹고 우유도 먹었다. 그럼에도 종일 누워지내야 한는 답답함때문에 짜증이 나고 짜증이 쌓이다보니 앞이 막막했다.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길을 가르쳐준다. 그러면 그가 일러준대로 한참을 걷다보면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하략)
마지막 문단을 다시 보라.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길을 가르쳐준다. 그러면 그가 일러준대로 한참을 걷다보면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 잘 구분하자.
결론: 개인적으로 권박사님은 서울대부속병원 한의진료부 체질의학과로 들어가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4차면 4차다워야하는데 4차답지 못한 한의원이 많다. (나름대로 각자의 메뉴얼대로 천차만별의 진료를 하는 우리 모두가 '작은 박치완'들이 아닐까?)
'낫을지 안 낫을지 모르지만 일단 열심히 한번 해봅시다.'
이거 정말 4차의료기관다운 무책임한 멘트 아닌가.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
이거 구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돈받고 치료해주는 업종은 짜다리 열심히 안해도 좋으니 무조건 잘해야 된다.
의료인에게 있어서 검증되지 않은 강한 신념은 정말 무서운 것. 거기다 그가 국가에서 발급한 종이까지 소지하고 있다면 거기다 환자가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나약해져있다면 가히 폭발적인 위력을 갖는다.
종합병원에 한의진료부가 들어가야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음은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발췌한 것을 다시 퍼옴. ㅡ.ㅡ;;;;;;
김영갑. 제주도에서 활동한 사진작가로 얼마전 루게릭병으로 사망함. 그가 양방에서 치료받아도 죽었을 것이고 한방 제일의 명의에게 갔어도 죽었을 것이다. 다만 언제 어떻게 지내다가 죽었느냐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중략) 그때부터 루게릭 병과 나의 눈물겨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대로 한방체질치료에 들어갔다. 한의사는 내가 사람의 여덟 가지 체질 가운데 금음에 속한다고 진단했다.
한방치료를 시작하고부터 일년동안은 채소와 생선만을 먹었다. 민물 생선을 먹어서도 안 되고 뿌리채소 또한 먹을 수 없는 것이 금음 체질이다 또 어떤 약도 먹어선 안 되기 때문에 루게릭 병의 진행억제제인 미즈텍마저도 금지되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서울에서 지냈다. 예약 한시간전에 한의원에 도착해서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다. 가끔 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짧게는 몇달, 길게는 몇년씩 침을 맞는 중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년넘게 치료에 매달렸다는 중환자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해 종합해보니 모두 효과를 보았다고 했다.
오분정도 치료받기 위해 스물네시간을 기다렸다 침을 맞고 나면 손하나 까닥할 힘도 없어서 하루 스물네시간을 꼬박 누워 있어야만 했다. 매주 서울과 제주를 오르내려야 하는 번거로움때문에 치료를 포기할까도 싶었다. 한의사가 치료비 달라는 소리 않을테니 조금만 더 해보자고 말렸다. 의사의 말에 믿음을 갖고 매달렸지만 상태는 더욱 악화되기만 할뿐이었다.
급기야 혼자서는 서울을 오르내릴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반년넘게 한주도 거르지 않고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기는 커녕. 걷는것도 힘에 부쳤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근육통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결국 침술 치료를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
그후로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삼십분이상 의장에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의자 등받이나 벽에 기대어 근육이 아파 못 견딜 지경이었다. 반듯하게 누워 손하나 까딱하지 않으면 겨우 통증이 가라앉는듯 했다. 그러나 손가락이라도 조금 움직일라치면 또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어느 한군데가 아픈 것이 아니라 전신이 못 견디게 아파왔다. 조심스럽게 모로 누워보지만 그러고 나면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호흡이 불안정했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이대로 정말 죽음을 맞게 되는가 싶은 절망적인 날들이 계속되었다.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 전국을 헤멘지 어느덧 삼년, 그러는 동안 치료는 커녕 기력만 소진하고 말았다. 폭풍이 치는 그믐밤, 망망대해에 나 홀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어둠뿐, 별빛이라도 보인다면 직감으로나마 방향을 잡으련만 칠흑같은 어둠이다. 보이지도 않는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며 기력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날이 밝기를 기다리자. 대책이 없을때는 무대책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침술치료는 단념했지만 체질치료는 포기하지 않았다. 금음체질인 나에게는 어떤 약도 허용되지 않았다. 특히 녹용은 극약이었다. 그런데 어떤 한의사는 적극적으로 녹용을 권했다. 또 어떤 한의사는 금음체질에 독약이라는 인삼이나 영지버섯, 상황버섯따위를 권했다. 나 같은 체질에는 산삼마저도 효험이 없다고 했다. 영양제도 복용해선 안 되는데 그나마 비타민C 제제만큼은 허용되었다. 과일도 사과,배,호두,잣만 가능하여 금지되는 것이 더 많았다. 한의사가 지시하는대로 따르고 육류를 비롯한 유제품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자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무더위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의자에 앉는것도 힘에 부쳤다. 고개를 똑바로 세울수가 없어 인터뷰 사진을 찍으려면 늘 고개가 삐딱했다. 경추3,4번이 튀어나와 고개를 똑바로 하려면 손으로 받쳐야 중심을 잡을수 있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바닥난 체력때문에 누워있어도 식은땀이 흘럿다 어쩔수 없이 육류를 먹기로 했다. 그리고 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먹기로 햇다. 영양제도 먹고 우유도 먹었다. 그럼에도 종일 누워지내야 한는 답답함때문에 짜증이 나고 짜증이 쌓이다보니 앞이 막막했다.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길을 가르쳐준다. 그러면 그가 일러준대로 한참을 걷다보면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하략)
마지막 문단을 다시 보라.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길을 가르쳐준다. 그러면 그가 일러준대로 한참을 걷다보면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 잘 구분하자.
결론: 개인적으로 권박사님은 서울대부속병원 한의진료부 체질의학과로 들어가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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