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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들이 주로 하는 멘트 중에 "양방에서 포기한 환자"라는 단어가 있다. (무면허 돌팔이들은 "양방 한방에서 모두 포기한 환자"라는 멘트를 쓴다.)

과연 한의는 양방에서 포기한 환자의 생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숭고한 휴머니스트들의 의학인가?

내가보기에 한의는 이 환자를 포기해야하는지 끌고 가야하는지조차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 레벨에 머물러 있다. 이건 한의 자체가 소프트한 의학(아무리 위중한 환자에게라도 해줄 수 있는 처치와 처방이 다양함.)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의임상연구의 시스템상의 결함이기도 하다. 한방병원+가정의학과 시스템으로 뭘 연구하겠다는건지.
경희대에서 말하는 '제3의학'도 실상을 알고보면 껍데기뿐인 허언에 불과하다. 원래 이런 학문적 연구의 사조에 이름을 명명할 때는 연구가 선행하고 후대에서 명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건 뭐 아파트광고도 아니고 연구도 빈약한 상태에서 이름만 덩그러니 스스로를 가리켜 '제3의학'이라고 명명하다니, 참으로 낯간지러운 일이다.
뉴튼이 언제 자기 입으로 "나는 물리학의 애비다."라고 한 적이 있던가.

예후예측 시스템이 결여된 임상교육을 받은 상태에서 배출된 로컬 한의들은 '포기해야하는지' '포기하지말아야하는지'조차 가늠이 안되기 때문에 무작정 침놓고 약먹이고 달려들게 된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드라마틱하게 낫더라가 될 수도 있고, 먹으나 마나 기별도 없더라가 될 수도 있다.

'안 나으면 말고...'모드로 진료하게 되는 것.

한의사의 입장에서는 그 치료가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이겠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한 희망과 시간낭비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로컬의들이 비난할 수는 없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서 치료해보려는 그들의 노력은 노력대로 인정받아야한다. 그렇다고 그게 면죄부는 될 수 없다. 김씨가 누누히 강조하는 말 있잖은가 '잘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우리사회에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메세지가 퍼지는데, 현실적으로는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

나을지 안 나을지 "모르지만" 일단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한번 치료해봅시다.

한의들이 이런 멘트를 구사하며 환자를 끌고 갈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한의 치료술의 부작용이 미미하다는 것에 있다. 침과 탕약. 이 치료술들은 제대로 명중시키면 한의사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효과가 있는 반면, 반대로 오치한다해도 그 부작용이 기껏해야 현훈, 오심, 소화장애, 설사 등에 그친다. 양약의 부작용에 비하면 새발의 피의 적혈구에 불과하다.

양약을 먹고 설사하면 "그 약 원래 그래요. 자, 지사제 먹으면서 계속 드세요"라는 멘트가 가능하지만 한약은 당장 약 전체를 바꿔줘야한다. 한의를 이용하는 환자들의 부작용에 대한 역치가 그만큼 작다는 것이다. 어떤 환자들은 한약에는 부작용이 없다고 알 정도로.
이런 판국이니 약성을 약하게 쓰는 경향이 유행하게 되고, 인삼백출향부당귀산사신곡맥아나복자가 베이스로 깔리는 소여물에 가까운 초대형처방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부작용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은 한의에게 축복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발전을 가로막는 양날의 쇠뭉치가 되기도 한다.


1998년 본2 병리학 시간에 최달영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의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먼저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는 환자인지 아닌지를 감별하는 것이다."


양방에서 가망이 없다고 [포기한 환자]가 있다면 한방에는 [포기해야하는지 포기하지 않아야하는지조차 모르는 환자]가 있다.


가장 용기 있는 의사는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대해 솔직히 모른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의사다. 초보의사일수록 환자 앞에서 '그건 제가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멘트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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