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생명체만이 일으키는 희한한 현상이다.
생명체의 본질은 피아의 구분이며, 외부환경과 격리된 내부에서는 보편적인 물리법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걸 생명현상이라고 부른다. 끝없는 외부공기와 외부물질(주로 음식물)이 생명체 내부로 유입되면서 생명체를 유지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런 피아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이다. 니꺼내꺼 구분이 없어진다. 피아구분이야말로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요인인데 그게 흐리멍텅해지는 것이다. 위험한 징조다?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생명체가 확장되는 것이다. 나의 신체가 연장되고 뉴런을 연장되고 공유하게 된다. 이런 건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내가 자식을 낳으면 나의 생명체가 자식의 몸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런 확장의 기쁨. 자식이 하버드 의대에 가면 마치 내가 하버드 의대에 입학한 것 같은 기쁨을 느끼게 된다. 사랑이란 이런 확장의 기쁨을 베이스로 하는 현상이다.
자식에게 10만원짜리 스테이크를 사주는데 하나도 안 아깝다. 100만원짜리 코트를 사주는데 마치 내가 그 코트를 입은것처럼 자식의 기쁨의 전기신호가 점프해서 나의 뉴런까지 연장되어 전달된다. 너의 기쁨이, 너의 고통이 나에게까지 오롯이 전달되는 상태. 공동생명체. 그것이 사랑이다.
집이 불타는데 방에 자식이 남겨져 있으면 뛰어들어가는가? 당연히 뛰어들어간다. 무엇을 위해? 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너와 나 구분이 없어지므로 자식인 너를 구하는 것은 곧 나를 구하는 것이다.
사랑 즉, 공동생명체 현상은 어디까지 연장될 수 있는가? 사물까지 이어질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학교, 스포츠팀, 국가가 박살날 때 -나의 뉴런이 반응하여- 내가 큰 고통을 느끼면 내가 그 무생물체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애교, 애사, 애국 등등 사랑애 자가 들어가는 모든 단어들처럼 매우 다양한 대상에 인간은 사랑의 힘을 적용시킨다.
사랑이라는 현상의 핵심은 '나의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다. 니꺼 내꺼 구분이 무너지는 것이다. 나의 에너지, 재산, 시간 등등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주고 공유하는 것이 사랑이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박남정이라면 기꺼이 나의 에너지를 들여서 눈길을 헤치며 사동잿만디를 넘어가서 도동까지 가서 애지중지 모았던 용돈을 헐어내서 오징어 한축(즉 나의 재산)을 사서 보낸다. 그게 내가 박남정을 사랑하는 현상이다.(실제로 사촌누나 이은연씨가 박남정에게 오징어 한 축 사서 보낸 적 있음) 내가 아스톤빌라 팀을 사랑하면 경기장을 찾아가고 유니폼을 사고 시즌권을 사고 시간내서 응원하고 나의 자원을 그 팀과 '공유'한다.
이런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인가? 진화론의 측면에서 보자면.
고대 현생인류 중에 사랑을 쉽게 느끼는(타인의 감정을 쉽게 느끼고, 나의 에너지와 자원을 타인에게 쉽게 내주고 도움을 주는) 즉 자신의 뉴런을 타인과 쉽게 공유하는 유전자형질을 가진 종이 있으면 그 종은 쉽게 무리생활을 하게 되고 협동하고 서로 돕는다. 타인에 대해 쉽게 사랑을 느끼지 않는 종보다 훨씬 유리한 생존환경을 만들었을 것이다. 금사빠 종들이 외로운 늑대형-타인의 감정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의- 인종보다 더 단합하고 서로의 생명체를 공유하며 무리 단위로 장수했을 것이다. 그런 형질이 수만년 내려오면서 거의 모든 인류가 기본적으로 금사빠의 특징을 보유하게 되었다. 즉 생존에 유리해서 그 방향으로 발달될 것 뿐이다.두가지 종으로 나누자면 무리들과 식량 등을 '공유'하는 종과 공유하지 않는 종 중에 전자가 더 많이 살아남은 것 뿐이다. 사랑이 위대하고 그런거 없다. 무리생활은 생존에 유리하고 호감은 본능이다. 키크고 덩치좋고 잘 생기고 머리 좋고 직업 좋은 남자, 허리 잘록하고 얼굴 예쁘고 애교 많고 골반 발달돼 있고 어리고 피부 깨끗하고 하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생명체 내부의 깊숙한 곳과 사회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대대로 학습되어 내려온 본능이다.
사랑은 영원불멸이 아니다. 식고 달구어지고 변한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미세먼지 농도처럼 환경에 따라 변하며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우는 없다. 영원한 사랑은 노래에만 나오는 망상이다.
끝없는 피드백을 통해 사랑은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기도 하고 녹기도 한다. 와이프한테 10만원짜리 선물 사줬는데 내 생일에는 30만원짜리 선물로 돌아오면 그 다음 해에는 50만원짜리 선물이 나가게 된다. 반대로 천만원짜리 명품빽을 사주는데도 툴툴거리고 10만원짜리 스테이크 사먹이는데도 '아빠 이거 왜 이렇게 맛짜가리 없어? 이런거 밖에 없어?'가 반복되면 네거티브 피드백이 작동하여 눈덩이가 점점 녹게 된다. 남녀간의 사랑뿐 아니라 자식, 친구, 스포츠팀, 모교, 모국 등등 생명체 외부를 향한 사랑의 농도는 끝없는 피드백을 통해 딱 맞을 정도로 적당한 강도로 수렴하게 된다. 500만원어치 저지를 사입었는데 선수퇴근하는 버스 앞에서 싸인볼 하나 못 받고 홀대받으면 눈덩이가 녹기 시작한다.
친구 간에도 내가 만날때마다 5만원짜리 스시 사주는데 내가 그 친구 동네 놀러갔는데 그 친구가 김밥 한 줄 안 사려고 하는게 느껴지면 네거티브 피드백(본인은 상처받는다라는 표현을 함)이 급속히 작동하여 우정이라는 사랑의 파워가 급속도로 작아진다. 이런건 본능적인 반응이다.
정없는 놈! 니꺼 내꺼를 잘 구분하고 잘 챙기는, 그런 성향의 놈들을 우리는 정없는 놈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그런 분류를 빨리 캐치해내려고(우리가 쓸 있는 재산, 시간, 에너지 등의 자원이 한정적이므로) 우리는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다정한 사람과 소정한 사람. (bk박사님이 세계 최초로 발표한 이론이다. 다정/소정 이론) 정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우정, 효, 애국, 애교, 신앙심 등의 다양한 관계가 포함된다. 애인이랑 영화관에 가서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영화를 한번 보라. 쉽게 타인의 감정에 공명을 일으키는 사람과 피도눈물도 없는 놈들이 있다.
정의 없음을 숫자로 표현한다면 자신과 비슷한 레벨의 '정없음'을 가진 사람들과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 정없는 놈들은 정없는 놈들끼리 모여산다. 정이 많은 사람은 정없는 사람들과 오래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다정한 놈들은 다정한 놈들을 주변에 두고 서로 포지티브 피드백으로 더욱 관계를 강화하며 살고 소정한 놈들은 주변에 소정한 놈들만 남는다. 끼리끼리 모여산다. 행성과 항성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듯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다정한 놈들은 서로 퍼주며 잘 살고, 소정한 놈들은 나름대로 지꺼 잘 챙기면서 잘산다.
문제는 '정없음'의 레벨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관계가 부부로 엮일 때에 생긴다. 정신없이 퍼주는 정많은 놈이 정없는 놈과 결혼했을 때 결국은 둘 중 하나다. 다정한 레벨로 올라가든가, 소정한 레벨로 내려가든가 후자의 경우 니꺼 내꺼 따지고 네거티브 피드백이 작동하면 답이 없다. 그래? 니가 이 정도도 안해? 그럼 난 이거 안해.? 어? 너도 그거 안 해? 난 더 안해줘야지. 난 더 손해보지 않겠다! 서로 서로 더 안 해주기 경쟁을 하면서 결국에는 남보다 못한 관계로 나락으로 간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느냐? 정없는 놈이 다정한 놈의 레벨에 맞춰줘야한다. 네거티브 피드백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위상값을 돌아보며 <노력>을 해야한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자전거 페달처럼.
다정과 소정은 상대적인 스펙트럼이라서 A에 비해서는 내가 다정한 사람인데 B에 비해서는 소정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