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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이라는 과목이 있다. 죽은 사람을 칼로 째서 그 내부를 주물럭거리면서 공부한다는 비교적 부정적인 이미지의 과목이다.

어떤 고등어들은 한의대에서는 해부학을 안 배운다고 알고 입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의대에서도 배웁니다.-_-;;

본1때, 우리대학 해부학 교수님이 새로 부임하셨다. 작달막한 키에 통통한 얼굴과 체형, 가느다란 눈매에는 언제나 묘한 미소를 가득 담고 다니시는데 딱 한가지 흠이 있다면 불행히도 노총각이시라는 것이다. (물론 외모로만 본다면 국민학교 애가 있을법 하지만)

그 교수님이 어느 날 자신의 반쪽을 찾아 선을 보러 나가셨다고 한다. 여자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여자가 무슨 과목을 전공하시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교수님은 아무렇지 않게 해부학을 전공한다고 했고, 결과는 독자 여러분의 무한한 상상에 맡긴다. 다만 그 후로 교수님은 절대로 선을 보실 때 해부학 전공이라고 말하지 않고 대신 형태학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속히 반쪽을 찾으시길 기원드린다.

아무튼 본과 1학년이 되면서 가장 많은 학점을 자랑하는 이 해부학이란 놈을 배우게 되었다. 자칫 해부학에서 잘못 보이게 되면 유급을 먹는 치명적인 사태가 생길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해부학에는 골학이라는 게 있는데 뼈를 공부하는 부분이다. 이 골학이 해부학의 가장 기초적인 분야이다. 뼈다구마다 붙어있는 수십개의 구조물의 이름을 줄줄 외워대는 골학에 장장 두달 동안이나 시달리고 나서 총 오랄테스트를 마치고 시체를 메스로 찢어가며 요리보고 조리보고 발라내가면서 실습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학교 해부학 실습실이 아주 엉망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한의대에서 해부학을 실습해왔는데, 법적으로 한의대에서는 시체를 처리할 수 없기에 그냥 방치해두었다고 한다.(이 땅의 한의학은 이런 식이다. 투쟁만이 살길이다! 동지여! 한의대 시체도 화장할 수 있게 해달라.)

세상에 그 오랜 시간을 방치해두었다니! 하지만 언제나 정의는 승리하는 법! 드디어 1996년도에 한의대에서도 시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어서 화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단다. 그래서 이번에 지금까지 처리하지 못하고 묵혀둔 시체들을 한꺼번에 끄집어내고 실습실을 깨끗이 청소하는 영광스런 임무가 우리 학년에 배당된 것이었다. (아이고! 하느님!)


결국 자원자를 뽑아서 해부학실습실 청소를 했다. 당일날까지 망설이던 나는 '그래, 언제봐도 볼 꺼, 미리 한번 보지 뭐.' 하는 심정으로 뽀얀 가운을 챙겨서 4층으로 향했다.

실습실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벌써 포르말린 냄새가 진동을 했고, 냄새를 따라 찾아 들어간 실습대기실에는.....세상에! 거기서 내 친구들이 짜장면을 먹고 있지않은가! 세상에! 옆방에선 썩은 시체들이 수두룩한데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니! (정말 인간은 위대하도다!)
준비실에서 조교와 몇마디 농담을 주고 받다가 마스크와 장갑을 받고 실습실로 향했다.

뚜벅뚜벅!

실습실을 향해 가는 길에서 내 다리가 평소와는 달린 약간의 진동이 있었음을 구지 이 자리에서 부인하지는 않겠다. 드디어 나도 시체와 대면하게 되는 구나!
문은 열려 있었고, 그 너머 테이블이 십여개 있었는데, 모든 테이블 위에 비닐에 싸인 시체들이 있었다.
처음 드는 생각은.."으아 많다! 으아! 세상에나! 으!"
이 많은 시체들을 다 우리가 처리해서 화장해야 한다니....

시체들은 모두 비닐뭉치에 대충 싸여있었고 시체로 보이지는 않고 나무가지처럼 모두 바싹바싹 말라있었다. 한 무리의 학우들이 테이블마다 붙어앉아 뼈를 발라내고 있었다. 메스로 근육을 자르고 끌을 가지고 싹 긁어냈다.

여기서 잠깐!
왜 뼈를 발라내냐면 해부학 하기 전 골학을 배울 때 뼈 모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무리 요즘 그림이나 사진이 좋다고 쓰리디 입체영상이 판을 친다고들하지만, 진짜 뼈한번 만져보는 것만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해부실습이 끝나면 뼈를 모두 고스란히 발라내고 묻어둔 후에 뼈에 붙어있는 살들이 모두 부패되어 없어지면 그걸 다시 파헤쳐서 말끔한 뼈들을 모아, 사랑하는 후배들을 위한 골학실습용 뼈로 제공되는 것이다.

한참 뼈를 발라내고 있는 학우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모두 무표정한 표정으로 가끔씩 마스크 너머로 눈살을 좀 찡그리며 능숙한(?) 솜씨로 말라붙은 살점들을 긁어내고 있었다.

일단 하얀 실험복을 입고 손에는 수술장갑, 그위에 면장갑 끼고, 다시 아주 두꺼운 고무장갑을 꼈다. 물론 마스크도 팽팽하게 썼다. 물론 냄새를 막는데는 소용이 없다.

조교가 저 쪽에서 나를 불렀다. (아! 불길한 예감!) 조교는 몇명의 학우를 뽑아서 어린애가 들어갈만한 큰 용기를 가리켰다.
잉? 저 속에 뭐가 들은거여?

조교가 뚜껑을 열었을 때, 그 속에는 차마 형언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걸 본 우리는 모두 '우욱'하는 소리를 내질렀고, 조교는 차디찬 미소를 머금었다. 그 통은 역대로 해부실습을 하면서 남은 찌꺼기를 모두 모아놓은 것이었다.
위장, 대장, 허파, 십이지장, 콩팥, 쓸개, 살점, 장갑, 붕대, 온갖 것들이 그 안에 가득 들어있었다.

물론 방부제를 부었다지만 부패되어 있었고 그 냄새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악취였다. 아무튼 우리의 임무는 그 통에서 내장들, 쓰레기들을 삽으로 떠서 비닐에다가 퍼담는 것이었다. 나중에 화장터로 보내질 거라고 했다.

우린 얼굴을 있는대로 찡그리며 일을 시작했다. 썩은 내장들을 삽으로 떠내어 비닐에 옮겼다. 읔! 한삽씩 리드미컬하게 뜰 때마다 확확 올라오는 그 냄새. 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헉헉! 그걸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하수도 냄새의 열배 쯤은 지독하다. 아니, 백배!

나랑 같이 삽을 뜨던 절친한 친구 최정락 군은 토할 뻔했다. 우리 둘이 리듬에 맞춰서 한삽씩 차근차근 들어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더니 숨을 헐떡헐떡 몰아쉬며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나 방금 목까지 올라왔어."

우린 그렇게 내장들을 비니루에 모두 담았다. 마지막으로 건더기를 다 담고 국물(?)도 모아서 비닐에 담고 두겹으로 봉했다. (우리가 해낸 것이다!) 우린 일을 마치고 조교에게 다 했다고 보고를 하니 조교는 다시 손짓을 했다. 우린 쭐래쭐래 따라갔는데, 그 곳에 그 악몽같은 내장통들이 2열 종대로 정렬해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아! 차라리 아까 시체 하나에 들러붙어서 살점이나 벗길껄! 괜히 얼쩡거리다가 이런 일을 해야하다니!

다른 방법이 없기에 우린 교대로 통을 비워나갔다. 역겨운 냄새와 썩어서 흐물거리는 내장들. 몇통을 비우고 나서 우린 온간 고통스런 표정을 조교에게 지어보이며 그 곳을 탈출(?)했다.


밖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쉬며 오늘 자원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 때, 저 쪽에서 철로 만든 관이 카트에 실려 굴러오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모래를 담아서 옥상으로 나르란다. 에구에구! 오늘 일복터졌구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현관에 있는 모래를 퍼담았다.
으악! 모래는 어찌나 무거운지... 온갖 잔머리를 다 동원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냥 낑낑거릴 수 밖에...


시체를 모두 수습해서 뼈만 모아서 소쿠리에 담아서 옥상으로 옮기고 모래로 묻었다. 나중에 살이 다 썩고 나면 골학 실습을 위해 필요한 뼈만 따로 추려내려는 것이었다.

중간에 교수님이 비교적 말짱한 사체의 목을 잘라냈다. 차마 보지는 못했지만, 한참 일하다 보니 테이블 위에 목 없는 시체가 하나와 그 옆에 따로 놓인 머리통이 보였다.

그 머리통에는 한쪽 귀가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그런데! 어떤 녀석이 그 머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만져보고 주물러거리고 정말 그 자식을 한대 갈겨주고 싶었지만 워낙 천성이 소심해서 그냥 참고 말았다. -_-;;;;

털이 빠지고 약간 부패된 시체의 얼굴은 해골보다 몇배는 더 흉칙하다. 으... 거기다가 목까지 잘려있으니...아우.

그런데 실습실 안에 있는데 눈이 무지 매웠다. 자세히 보니 문 앞에 포르말린 통이 자빠져있고 포르말린이 흘러나와 있는 것이었다. (포르말린은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이다. 시체마다 듬뿍 적셔놓는다.)

으... 누가 포르말린 쏟았어!! 으... 그 냄새는 둘째치고 눈이 어찌나 따가운지 정말 지독했다. 결국 실습실을 탈출하는 수 밖에 없었다.

4시간쯤 그런 일을 하고 났더니 온 몸이 늘어졌다. 이미 실험복은 시꺼멓게 됐고 아까 내장통에서 튄 국물(?)자국까지 있었다.(우욱!) 온 몸에는 포르말린 냄새와 시체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대충 저녁 때쯤 되어서 일이 마무리 되었을 때 쯤 교수님이 저녁회식을 하자는 제의를 했다. (이렇게 일시켜놓고 밥도 안 주면 인간도 아니다 -_-;;;;;)

하지만 아무리 먹는게 좋지만 일단 씻어야했다. 기숙사 친구방(최정락군)에 헐레벌떡 달려가 샤워를 했다. 몸에 배어있는 시체냄새와 포르말린을 말끔히 떨어내고 상쾌한 기분으로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다시 하숙방으로 향했다. 처음엔 좀 역겨울 것 같았는데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뭐 그런대로 견딜만 한 것 같다.

그날 저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녁을 꿀떡꿀떡 잘도 먹었다. 인간의 적응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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