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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9월 경, 당시 전국 한의대생들은 미등록 제적을 불사하며 등록거부 운동을 펼쳤다. 한의대의 수업거부는 계속 되었고, 미등록 사태가 9월까지 이어지자 다급해진 교육부는 학교에 압력을 가해 학생들의 등록을 강요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의대 학생들과 학교당국간의 마찰이 많았다.

그때 우리는 전한련에 맞춰 등록거부 투쟁을 펼쳤고 학교측은 학생들의 입장과 의견을 듣기보다는 정부에 동조하여 등록금을 내지 않으면 학부모들에게 제적시키겠다는 협박과 압력을 계속 가했으며, 우리 학교 교무처장은 심하게 발악하셨다.

교무처장은 9월 30일 밤 12시, 학교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모두 학교에 나오도록 호출했다. 그리고 본부를 설치하고 각 가정에 전화를 걸어 잠자는 학부모를 깨우게 해서 등록금을 내지 않을 경우, 당신 자녀를 제적시키겠다는 협박을 하도록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한의대 교수, 조교, 심지어는 학생회 간부라고 사칭까지 하도록 배후조종하였다. 우리는 그러한 반교육적인 만행에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고, 급기야 학교 점거작전을 수립하게 되었다.

흔히들 점거농성하면 그냥 애들이 우우~ 몰려가서 들어앉아서 농성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나, 실제로는 아주 치밀한 계획이 우선되지 않고는 실패하기 쉬우며 실패할 경우 학생 조직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 소지도 있기에 우리는 사전에 상세한 시나리오를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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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전 명 : 해태타이거즈 타격작전
타켓대상 : 해태타이거즈 은퇴선수
타켓장소 : 해태타이거즈 본부

작전 하루 전.
우린 밤늦게까지 회의를 거듭했다. 전국의 모든 한의대 학생회실이 도청을 당하고 있기에 우리는 동아리 방으로 자리를 옮겼고 보안을 위해 암호로만 대화했다. (우리 학생회를 담당하는 건 경주경찰서 정보계장 김형사라는 사람인데 사람들 말로는 아주 미남이라고 한다. 거의 매일 학생회 상황실로 안부전화(?)가 왔었다.)

##암호설명##

단무지: 돌격대
해태타이거즈 본부: 교무처장실
해태타이거즈 은퇴선수: 교무처장

(왜 해태타이거즈 은퇴선수라고 했냐면 우리 학보사 기자가 인터뷰 취재를 하면서 교무처장의 이름을 잘못 표기하여 '김성한'이라고 해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교무처장은 노발대발하였다는 후문임. 김성한은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대표적인 타자였다. 지금은 감독이지만...)

<<작전계획>>

1. 먼저 단무지들이 11시에 학교에 집합한다.
2. 단무지들이 해태타이거즈 본부 주변을 배회한다.
3. 오후 1시가 되면 한의학관에서는 본대 학우들의 집회가 시작된다.
(물론 계획을 일체 발설하지 않고 단순한 교내선전전이라 통보한다. 일단 단무지들이 점거에 성공하면 같이 합류한다.)

4. 같은시각 단무지들은 해태타이거즈 본부에 진입한다. (작전개시 암호는 본3 단무지의 "이야야야야" 소리임. 물론 본부에 있는 타이거즈 은퇴선수의 저항이 있을 수 있다.)

5. 단무지들은 은퇴선수를 최대한 봉쇄한다. (화장실도 못 가게 막는 다.)
6. 뒤이어 연락을 받은 본대가 구보를 하며 들어와서 단무지와 합류하면 작전은 일단 성공하는 것이다.


실제상황은 이랬다.
아침에 출근(?)하니 상황실로 전화가 왔다.
학생계장이라면서 오늘 한의대생들 집회 뭐할거냐고 물었다.
물론 오늘 별일 없다고 시치미 떼고 또 학생회 간부들이 나오지도 않았다는 새빨간 거짓말까지 했다.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

11시.
단무지들이 안온다! 큰일이다. 아~! 어떡하나!
아! 단무지들이 왔다. 모두 동아리 방으로 가서 행동지침을 교육받았다.

난 본대와 같이 있었다. 1시 집회는 역시 15분 늦게 시작되었다. 학교와 정부가 주타켓이었다. (구호 중에 재미 있던 걸 소개하자면, "한의대생 수업복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이게 당시 유행어였다.)

도서관 앞에 가서 큰소리를 하고....
"안녕하십니까.....학우여러분...저희는...오늘....."
큰소리를 모두 마치고 본관 쪽으로 대열을 이끌고 갔다. 대열을 맞추어서 걸어가는데 본관 쪽에서 신호가 왔다. 단무지들의 작전성공 신호였다.

본대 학우들을 뛰게 했다.
"대! 열! 정! 비!"

본관까지 뛰어들어가는데 아직 본대 학우들은 점거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장난 비슷하게 뛰었다.

"여러분, 장난 아닙니다. 빨리 뛰십시오."
"빨리! 빨리 2층으로!!!"
"신속하게 2층으로 올라가십시오!!"

2층으로 올라가니 이미 타이거즈 본부는 단무지들에 의해 상황이 종료된 상태였다. 학우들은 더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방 안으로 가득 들어갔다.
으....윽....이건....사우나!! 에고~ 더워라.

안에서는 교무처장의 노발대발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밖에선 아이들이 연좌농성하여 구호, 노래를 외치고....

갑자기 교무처장이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였다.
뒤에서 어느 아이가

"야~ 못나가게 해. 요강 갖다줘!! 요강!!!"

그 소리를 들은 교무처장은 화가 발끈나서
"뭐? 요강?? 그래, 갖고 와!!!"

결국 한 아이가 시내 모시장 가서 진짜 요강을 사서 교무처장실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교무처장은 숫자를 세었다고 하는데...
"난 이런 상황에서는 얘기 못해! 하나!"

학생회 간부들이 계속 지난번 사태를 추궁하자, 교무처장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난 이런 상황에서 말못한다고 말했잖아! 두울!"
이런 식으로 해서 열여섯!까지 나왔다.

이윽고 총장실에서 면담이 있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학생대표가
"새벽 두세시에 전화를 했지 않습니까!"라고 따지니까

교무처장은
"우리가 전화를 한 것은 사실이다. 12시 20분부터 3시 20분까지만 했다."라고 순순히 자백해서 우리들에게 협조?까지 했다.

불행히도 나는 하루종일 뛰어다니면서 막일을 했다. 점거상황을 통신망에 보고하고, 비상연락망 돌려서 애들 모으고, 학생회 가정통신문 450통을 부치고(헉헉~) 밤샘점농에 대비해서 스티로폼을 갖고 본대까지 갔다. 에구에구. 무거워라.

원래 점거는 최소 1박 2일로 작정했다. 그래서 스티로폼을 준비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스티로폼을 가지러 갔더니, 옆에 이불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이불도 같이 가지고 갔다. 헐떡헐떡~

점거하는 총장실 복도에 이불과 스티로폼을 가득 쌓아두었다. 나중에 듣기로 우리가 들고간 이불을 본 학교 측이 협상을 서둘렀다고 한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들고간건데..-_-;;)

결국 우리의 점거는 총장 사과문을 받아내고 약 4시간 만에 철수하였고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점농을 깨끗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국대학교 당국은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며칠 후 발송된 편지에는 총장 사과문이 부총장 사과문으로 대체되었고 내용이 극히 부실하였으며 사과문이라는 제목조차 달지 않았다.
완전히 기만하였다. 단무지들 몹시 화났다.


(본관점거까지 하며 우리는 등록을 거부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결국 전국 한의대에서 120여명만이 등록을 거부하여 제적을 당하게 되었다. 이 학생들이 제적당하면서 학생 조직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이후의 투쟁 방향에 있어서 제적생들을 복귀시키는 것이 큰 변수가 되었다.)

투쟁에 있어서 일벌리기는 굉장히 쉽지만, 가장 정확한 타이밍에 접는 것이야말로 바로 지도부의 역량이며, 그것이야말로 투쟁의 승리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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