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내가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처음 맞은 겨울방학. 1994년 겨울.

과외 알바를 하려고 했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에 비해 돌아오는 댓가가 미안할 정도로 과분하여 쉽게 그 유혹을 떨칠수 없었지. 당시만해도 몇몇 과목에 대해서는 포항시내 웬만한 고등학교 선생이나 학원강사보다 더 쉽게 잘 가르칠 자신 있었다.지금은 다 까먹었지만...ㅡㅡ;;;

태어나서 지금까지 용돈의 압박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용돈을 받은적이 없다. 신여사와의 워낙 돈독한 라뽀형성이 돼있어서.ㅋㅋ) 돈 받고 과외하기는 왠지 불로소득 같아서 싫고 시간은 남아돌고 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공짜 과외. 그때 내 동생은 나보고 미쳤다고 했다.

그 방법을 찾아 며칠 고민했다.
며칠 돌아다닌 끝에 집에서 좀 떨어진 창포동 사회복지관 사무실을 찾았다.  그 사무실에 들어가는데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평소 자전거 타는걸 광적으로 좋아해서 맨날 싸이클을 타고 시내를 헤집고 다녔는데 그 며칠 동안 바로 문앞까지 달려갔다가 스스로 온갖 핑계를 다 대서 돌아서기 일쑤였다.

며칠 헛걸음을 하고나서 겨우 마음을 다잡고 들어갔다.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영 어색한 분위기. '너 여기 왜왔니?' 이런 분위기. 아 정말 뻘쭘하게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스무살이었다우. ㅡㅡ;;;)

일 때문에 왔다고 하니까 누가 구석에 있는 소파로 안내를 해줬다. 거기서 간단히 인사를 하고 나의 신상명세를 카드에 적어내고 몇가지 대화을 했다. 이름, 나이, 직업, 주소, 가족관계, 동기, 기타 여러 사항을 꼼꼼히 적어냈다.
한참 내 카드를 쭉 읽어보던 담당 아저씨가 날 보고 이러는거다.

"일하고 싶은 대상이 소년가장에 동그라미 치셨네요? 요즘 거의 대부분이 이걸 적죠. 사실은 이쪽보다는 노인분들이나 장애자분들 도움이 절실하거든요. 우리 복지관에 나오는 애 중에 OO라는 여고생이 있는데 참 착해요. 걔는 맨처음 들어왔을 때 장애자를 택했거든요."

'머야 난 안 착하다는거야?'

지금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직원은 내게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 난 그 대상이라는 항목을 적는데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난 그저 양질의 공짜과외를 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적은 것 뿐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들한테 과외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 아저씨 말은 내가 마치 속물적인 근성을 발휘해서 나중에 무슨 득이라도 보려고 소년소녀가장을 택했다는 식이었다. 일종의 투자의 형태로 말이다!!!
어찌나 불쾌하던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우~!!! 기분 나빴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내가 여기 온 뜻이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물론 그때 내가 하고싶은 일을 당당하게 말했더라면 사건이 잘 풀렸겠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그때는 수줍은 스무살이었다우. ㅡㅡ;;;)

갑자기 이상한 놈으로 취급받으니까 상당히 불쾌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내 뜻을 전달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과외를 해주고싶을 뿐이라고요라고 말하면 오히려 더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서.

사실 내 경우와 맞지는 않았지만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아저씨 말 속엔 한번 되새겨볼만한 뼈가 들어 있긴 있었다.

인사를 받고 그 사무실을 나서면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과연 나의 이번 행위가 정말 봉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혹시 이벤트는 아닌지. 가식은 아닐까? 나 스스로 나 자신까지 속이는 것은 아닐까?

다음날 난 약속대로!! 그 사회복지관에 출근(?)했다. 그리고 일거리를 배당받았다. 설문지 내용정리였다.

몇백장 되는 것이었는데 몇시간 안에 다 처리하란다. (말투는 권유형이었지만 완전히 노비 취급이다. 당연히 거부감이 생긴다. 나 원래 이런거 할만큼 저급인력 아닌데...난 그냥 애들 가르쳐주고 싶단말이여욧!!)

그래도 묵묵히 일을 했다.(내 특기다. 묵묵하게 일처리하기.) 점심도 굶어가며 그 일을 했다.(일은 산더미같이 시켜놓고 점심도 안 주더군.) 같은 용지를 수백장씩이나 정리하려니까 여간 스트레스 받는 게 아니었다.
중간에 나가서 쉴 수도 없고 혼자 쪼그리고 앉아 그 일을 했다.

한참 하는데 어떤 여중생이 들어왔다. (내가 일한 곳이 공부방이었다. 하루에 100원짜리 공부방)
그 애는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나하고 놀고 싶어했고, 나는 대충 일을 끝내놓고 그 녀석 문제지 푸는 걸 봐줬다. 영어문제지였는데 의문문 만들기였다. 난 심혈을 다해 설명해줬고 그 이쁜 꼬마 녀석은 번개같이 다 까먹었다.

대충 한시간 정도 그걸 봐줬다.(그래 내가 원하던 일이 바로 그런 거였다.!!) 그리고 나서 꼬마를 배웅해주고 난 대충 설문지를 챙겨놓고 집으로 왔다.

난 그날 딱 한번 간 이후로 한번도 그 사회복지관에 가지 않았다. 그후 1년 동안 내게로 편지가 모두 세번 왔다. 하지만 모두 반송시켰다.

여기서 말하고싶은 것은 내가 한 때 창포동 인근에서 배회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대생들의 의료봉사에 대한 것이다. (조금 민감한 이야기가 될수도 있겠지만)

한의대생들은 여름 겨울에 시골벽지로 무의촌 의료봉사라는 걸 떠난다. 학생신분에서 봉사라는 간판을 걸고 의료행위를 한다는 것은 몇가지 미묘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의료법에 있다시피, 학생들의 의료행위는 한의사나 한의대 교수가 진료를 감독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감독을 하는가? 물론 하는 경우 있다. 하지만 감독 안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당신들 확언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런 법조문의 논의를 떠나서 학생 신분이 타인에게 봉사라고 부를 만한 최소한의 소양을 구비하고 있는가? 혹시 의료봉사를 떠나는 학생들의 마음 한 구석에 편법적 진료경험을 쌓기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혹제기가 바로 이 글의 본론인 것이다.

많은 한의대생들은 의료봉사 써클에 가입하고 있고, 써클이 없더라도 어떻게 연줄을 대서라도 의료봉사를 가보고 싶어한다. 이러한 현상은 본과 고학년이 될수록 더 심해진다. (난 졸업할때까지 그런 써클에 들지 않았다.)
왜 그럴까? 만일 의료봉사를 떠나는 이유가 한의대의 실습교육의 부실 때문이라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는 학교와 싸워야지, 시골로 실습대상을 찾아서 떠나서는 안된다고 본다. 무의촌에 가서 학생들이 치료해주는 것만해도 고맙게 생각하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 무의촌이 있기는 있나? 실제로 한의대생 중에 무의촌에 살아본 놈이 있긴 있나. 나는 어릴때 할아버지집에서 키워질때, 울릉도 사동 신리라는 곳이었는데, 완벽한 무의촌이었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 변변하게 치료도 못 받고 울릉도 보건소 배드에서 돌아가셨다.

가끔 봉사랍시고 엠티 비슷하게 시골에 가서 침도 놓을 줄도 모르는 새파란 본과생들이 할매들 눕혀놓고 아무데나 뜸질하고 침 들고 푹푹 쑤시고 있는 거 보면 걔들이 내 할머니를 쑤시는 것 같아서 정말 멱살 잡고 한대 패주고 싶다. 의료봉사라는 플래카드만 내걸면 검증도 안된 저질 불법의료행위가 덮어지나??

진짜 봉사를 하고 싶으면 한의사 면허를 딴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뭐가 그리 급할까? 나는 선배와 동료들이 졸업 후에도 학생 때처럼 방학때마다 무의촌 봉사에 달려드는 걸 본적이 없다. 그게 단지 시간이 없기 때문일까. 학생때는 방학마다 레밍스처럼 봉사러쉬를 가더니 졸업하고는 얼씬도 안 하더군.

그 누구도! 약간의 마음일지라도! 시골 할머니들을 실습대상으로 간주할 권리는 없다. 설사 할머니들이 고마워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무리 무면허 야매의 실력이 뛰어나도 불법은 불법인 것이다. 야매에게 침맞고 고마워한다고 해서 그 야매의 불법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의대에서 의료봉사 가면 병원에서 진료보는 선생들이 통째로 나가서 진료의 축이 되고 의대생들은 아무리 본4라 할지라도 시다바리 일밖에 안하는데, 한의대생은 본4만 되면 자기가 무슨 진료과장인 것처럼 행세하더군. 실제로 호칭도 과장이더군. 나 참 같잖아서. 나는 경주에서 모 동아리에서 본과 1학년이 진료한다는 소문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사실이면 '엽기'라는 단어가 어울릴만하다.

의대보다 한의대에서 의료봉사가 활발하다는 것은 그만큼 임상실습이 부실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내 사견이다.)

임상실습이 부실하면 학교에 제대로 된 실습교육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일이 힘들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후배들을 학교 밖으로 침통들고 나가게 할 것인가. 실습은 학교에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병원이란 실습하라고 만들어놓은 곳이다. 언발에 오줌누면 얼게 마련이다.

봉사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 말라.
'심리적 이기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아무리 봉사라고 치장한다 해도 그 행위를 통해서 무언가 나에게 득이 돌아 왔다면 그런 행위는 봉사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간 칠곡군 인근에서 의료봉사 플래카드 붙이고 학생들끼리 오붓하게 침통 들고 할매들 푹푹 쑤시다가 나한테 걸리는 날엔 모두들 경을 칠 것이요!
반응형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