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사님. 저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고3 수험생입니다. 좋은 대학에 못 갈까봐 너무 불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불안한 마음이 없어질까요?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기분도 다운되고 힘듭니다. <서울에서 헤리슨 드림>
: 안녕 해리슨, 네가 불안한건 너의 '욕망' 때문이야.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너의 실제모습과 괴리된 욕망.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갖고 산다. 암에 안 걸렸으면 하는 욕망. 오래 살고 싶은 욕망, 좋은 직장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 결혼하고 싶은 욕망, 아이를 낳고 싶은 욕망 등등
불안의 기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네가 이제 막 운전면허증을 땄다고 치자. 오늘 3시까지 북아현동에서 출발해서 강남역 3번 출구에 있는 대보빌딩 지하주차장까지 운전을 해야해. 어때? 불안하지? 운전실력은 형편없는데 무사히 강남역까지 가고싶은 욕망이 서로 부딪치는거야. 그러면 불안해져. 너도 아는거야. 내 실력이 목표완수하기에는 간당간당하다는 걸.
그런데 오늘 3시에 구구단시험이 있다고 하자. 불안하니? 아니지. 왜? 구구단을 너무 잘 하니까. 너무 너무 익숙해서 눈감고도 외우는거야. 그러니까 구구단시험을 잘 치고싶다는 욕망과 너의 실존 사이에 괴리가 없어. 오히려 실존이 더 높아. 전혀 불안하지 않아.
둘 중의 하나를 해라.
1.욕망을 낮춰
2.실존을 높여.
좋은 대학에 가고자하는 욕망을 버려. 아니면 구구단처럼 너무너무 잘할 정도로 노력해.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다.
먼저 욕망을 그대로 두고 실존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강남까지 운전하는게 너무 불안해? 일단 부족한 점부터 인정해. 이게 첫 단계야. 네가 부족한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어. 면허증이 있지만 나는 운전실력이 형편없다는 걸 인정해. 인정 인정 인정. 그래야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그래야 시골 공터에 가서 연습을 해도 자존심이 안 상해. 차 없는 도로에 가서 연습하고 또 연습해. 한남대교 넘어갈때 마음이 편안해질 정도까지 연습해야지. 노력은 하기 싫고 운전은 잘하고 싶으면 그게 놀부심보다. 스스로의 부족함부터 인정하는 것부터야. 잊지마. 너 잘난 놈 아니야. 평범해. 그저그래. 너 하나 세상에 없어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두번째로는 욕망을 낮추는 법이 있다. 운전을 잘하고 싶다는 욕망을 버릴까? 좋은 대학 가고싶다는 욕망을 버리까? 점수 나오는대로 가라는대로 갈까? 그런 조언을 하는 놈들을 조심해라. 좋은 대학 가도 잘 안 풀리고 반대로 후진 대학가서 학벌 없어도 취업 결혼 재테크까지 술술 풀리는 사람 많다고 너무 걱정하지말라는 달콤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꺼야. 그런 콜라같은 말을 조심해라. 데바전자보다 삼성전자 들어가는게 훨씬 좋지. 데바전자 가도 삼전보다 더 잘 풀릴 수 있다고 요사스러운 말 하는 놈들 조심해라. 경북대 전자공학과 가는 것보다 서울대 의대 가는게 훨씬 인생이 잘 풀린다. 경대 전자가 4번 국도라면 서울대 의대는 고속도로야. 물론 국도로 가도 되지. 나름의 재미가 있지. 그런데 고속도로가 훨씬 안락하고 편안하고 좋다. 만약 호산대 물리치료학과를 가게 된다면 비포장길로 달려가는거지. 물론 거기도 길이 있다. 죽진 않아. 덜컹거리고 불편해서 그렇지. 호산대를 가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평생을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며 살아가야한다. 학벌이라는 건 노동시장의 브랜드 같은 거라서 데바전자 핸드폰과 갤럭시가 있으면 누구나 갤럭시에 눈이 가듯이 상품성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해리슨 군이 사장이라도 호산대보다 서울대 나온 애를 뽑고 데바전자보다 갤럭시 핸드폰을 선택할 거 아냐?
좋은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좋은 직업도 한정되어 있는데 모두가 좋은 집, 좋은 차, 많은 돈을 벌고 싶으면 당연히 경쟁이 생길수밖에 없고 그 경쟁을 당연하고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다.
고속도로에 모두가 올라탈 수는 없어. 좋은 직업은 한정적이거든. 경쟁을 나쁜 것으로 이야기하는 놈들을 조심해라. 콜라를 뿌리고 다니는 놈들이야. 귀에는 달콤하게 들리지만 불량식품이다.
욕망은 좋은 모티브야. 다만 적당해야 좋은 거지. 너무 얼토당토 않으면 인생이 낭비된다.
이제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만약 내가 고속도로에 못 올라탔다. 그럼 내가 어떤 이유든지 간에 (부모로부터 받은 렌트카 제원에 문제가 있든, 내가 노력이 덜했건, 운이 나빠서 악천후를 만났던) 나보다 잘 난 놈들이 이미 고속도로에 올라탔기 때문에 내가 밀린것 뿐이야. 당연한 거고, 당연히 고속도로에 너의 자리는 없어. 네가 떨어지는게 당연한거야. 억울한 게 아니야. 너보다 잘 난 놈들이 잘난 도로를 차지하는게 당연한거지. 너가 그들을 밀어내고 고속도로를 차지하는게 더 부당한거야.
다만 인생이 끝난건 아니지. 인생의 한 부분이다. 야구로 치면 한 이닝이 끝난 거다. 게임이 끝난게 아니다. 맘에 안 들더라도 앞으로 이어진 길은 많거든, 국도, 지방도, 비포장, 자갈길.. 네 앞에 펼쳐진 길이 너의 수준이고 운명이다. 그 길이 불행하다는 건 아니야. 행/불행은 변수가 많거든.
다만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때가 있을꺼야. 와... 내가 이런 자갈길(지방대 나와서 변호사 사무장)을 타다니, 난 고속도로(사시합격해서 서울 판사발령) 탈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하지말고 단순한거야. 엄청 불행한 일이 생긴게 아니라 그냥 단순한 일이 일어난 거다.
"나의 실존에 비해 욕망이 너무 높았다."
그 갭이 클수록 불안, 좌절, 실망, 분하고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은 크게 생긴다. 전부 쓰레기, 잡초같은 마음이지.
자갈길 달리다보면 다시 고속도로 타기도 하고 그래. 확률은 매우 낮지만. 잊지는 마. 내가 지금 달리는 있는 이 길이 딱 내 수준이라는 걸.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이유가 다 수긍할만하다는 걸.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걸.
대부분의 우리의 삶은 욕망을 까내리는(에라이, 아무 대학이나 가자) 게 아니라 나의 실존을 욕망의 레벨에 맞도록 올리는 노력을 해야 결과가 좋다. 그런데 살다보면 욕망의 레벨을 낮춰야하는 때가 있다. 그건 나의 노력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욕망인 경우 그렇다. 친구의 언행, 한국대표팀의 월드컵 16강진출, 시어머니의 말투, 남편의 성격, 국제유가의 적정가격, 직원의 근태 성품, 이런 영역에 욕망을 높게 설정하면 당연히 쓰레기같은 감정만 생긴다.
중요한건 욕망의 성질이다. 욕망이 나의 영역이면 실존을 올리도록 하고, 나의 영역이 아니라면 욕망의 레벨을 조절해라. 이게 핵심이다.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욕망의 문제는 레벨을 더 낮춰야한다. 예를 들면 시험합격 같은 나의 영역에 있는 욕망은 레벨을 살짝 높게 해서 긴장과 스트레스를 모티브로 삼아서 바로 옆 친구와 경쟁하며 싸이클경주하듯 최대한 좋은 도로를 탈 수 있도록 노력해라. 어떤 도로를 타게 되든 결과는 수긍하고 그 도로 안에서 또 노력을 해서 실존을 올려가면 된다. 해리슨 군의 앞날에 건투를 빕니다.<bk>